혁오의 <위잉위잉>과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는 요즘 한 번 씩 듣는 노래다. 혁오의 노래에서는 삶에 찌들어 연애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슬픔을, 자이언티의 노래에서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애환을 느낀다. 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고들 하는데, 아이유의 남자 장기하가 <싸구려 커피>에서 찌질하게 묘사했던 삶의 모습이 비슷한 형태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음악평론가들은 신승훈, 김건모 등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8〜90년대를 대중음악의 전성기라고 말한다.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다양한 주제의 노래를 불렀고 히트곡은 100만 장 이상 앨범이 팔렸으며 때문에 음반시장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당시의 노래들은 사랑 타령이 많았을지언정 생존에 찌든 모습을 노래한 곡은 거의 없었는데, 비록 GNP는 지금에 비해 훨씬 낮았지만 취업의 문이 좁지 않았고 빈부의 격차도 적어서 상대적 박탈감도 덜 느끼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기술적으로 더 발전된 사회가 되었고 나라도 훨씬 부유해졌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국민들의 삶은 오히려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20대 젊은 가수들이 사랑도 하지 못하고 찌들어 살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노래하고 있는 모양이다.
  2천년 전에 만들어진 유교 경전 속에 ‘인간과 짐승은 별 차이가 없다(人之與禽獸相去者幾希矣)’라는 말이 있고, 석가모니는 ‘세상은 욕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했으니 예전부터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만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말이 맞다면, 예나 지금이나 사랑과 삶을 영위하는 일은 원래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예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미래에도 어려울 것이니 결과적으로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원래 어렵고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니 나만 특별히 어렵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그래서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 얻은 조그만 사랑의 불씨와 삶의 희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잉위잉>도 <양화대교>도 <싸구려커피>도 모두 가난을 노래 속에 담고 있다. 이처럼 젊은이들을 비롯한 일반국민들의 고민은 대체로 돈에 기인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 살다보니 모든 일에 돈이 우선시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돈은 행복의 일부가 될 수는 있어도 전부가 되기는 어렵다. 그런데, 주위의 시선과 내면의 불안감 때문에 더 많은 돈에 욕심을 내다보니 내가 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내가 구속되는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그래서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돈이 아니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필요한 만큼’의 경제력에 만족하며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 게다. ‘필요한 만큼’을 조절하는 일도 ‘나만의 삶’을 찾아가는 일도 쉽지는 않겠지만,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원래 어렵다고.
  베트남 전쟁이 지속되자 밥 딜런은 <Blowin' in the wind>를, 존 레논은 <Imagine>을 부르며 평화를 소망했다. 지금껏 <위잉위잉>과 <양화대교>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니 이제 우리는 감사와 희망의 노래를 불렀으면 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더 나은 나를 만들 기회가 있다는 희망의 노래를.
이상봉(한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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