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은 30년 전 개봉한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영화 속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 분)가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안’에 날짜를 입력했던 미래의 바로 그날이다. 2015년 10월 21일. 그 날을 기념해 영화가 재상영되고, 할리우드에선 ‘백투더퓨처 데이’ 행사를 열어 기념했다. 여러 매체가 나서 영화 속 2015년이 현실과는 어떻게 닮고 다른지, 영화 속 기술로 무엇이 실현되었는지를 따져 보도했다.
앤디 위어의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마션>에선 쉴 새 없이 미국항공우주국(이하 NASA)의 로고가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화성에 혼자 남겨진 우주적 재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며 곧잘 “나사가 물건 하나는 잘 만든다”든가 “나사의 천재들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영화는 나사의 전폭 지원과 조언을 받아 완성됐다. <마션> 개봉에 즈음해 나사는 화성과 관련된 뉴스를 쏟아냈다. 화성에 소금물이 흐른 흔적이 발견되었다, 화성에서의 상황을 가정해 하와이에서 고립 훈련을 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영화 속 화성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시기며 내용이며 NASA가 영화 홍보에 열심히 한다는 인상을 줬다. 사실 이 영화 자체가 2030년대를 목표로 추진 중인 NASA의 화성 유인 탐사 프로젝트 예고편으로 보이기도 한다.
멀기만 할 것 같던 영화 속 미래는 오늘이 됐다. 오늘의 우주 영화들은 심각한 얼굴로 외계인과의 우주 전쟁에 나서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먼 미래의 일들을 그리는 대신 바로 오늘 우주에서 일어날 법한 ‘현실’을 그린다.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 등 최근 인기를 끈 우주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영화들은 현란한 시각 효과나 미지의 신비로움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우주 체험을 전하고, 과학적으로 그럴듯한 내용을 전략으로 삼아 흥행에 성공했다. 지구를 배경으로 한 재난 영화들이 좀비와 같이 비현실적인 설정을 선택하는 반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오히려 사실주의를 택하는 쪽이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 우주는 낯선 공간이 아니다. 아마존 정글이나 에베레스트 등반, 남극 탐험과 다르지 않은 극한 체험의 현장으로 우리 옆에 다가와 있다.
SF는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실상 오늘날 SF에 모이는 관심과 기대는 매우 현실적이다.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등 SF 작가들의 통찰과 미래 예측, 이들이 소설 속에 풀어놓은 새로운 기술을 오늘날과 맞춰보면 신기하다 싶게 짝이 맞는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산업용 로봇, 동작 인식, 무인운전 등 셀 수 없이 많은 기술이 소설과 영화 속에 펼쳐져 있다. 그건 신통한 ‘예지력’만은 아니다. SF소설이나 영화에서 싹튼 아이디어가 현실의 과학자들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동기와 힘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공상과학과 과학기술 사이의 관계는 점점 긴밀해지고 있다. 실감 나는 미래사회를 묘사한 2002년 개봉작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이하 MIT) 미디어랩과의 협업을 통해 영화 속 기술을 설계했다. 영화 <마션>은 NASA의 화성 탐사 홍보영화로 느껴질 정도다. MIT에서는 지난 2013년 SF 영화나 소설 속 기술을 직접 제작해보는 수업(Science Fiction to Science Fabrication)을 개설했다. 이제 공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느냐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사회 역시 <인터스텔라>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우주 영화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자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가 생각하면 씁쓸하다. 다행히 SF의 역할을 주목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SF 축제를 열고, 우리나라서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해 ‘SF 어워드’를 열어 시상하고 있다. 올해는 더 다채로운 행사로 규모를 키웠다. 미래를 바꾸려면 관람석에서 내려와야 한다. 경계 너머,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상상하라. 그것이 미래를 결정한다.

 이소영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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