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의지가 강하다. 상당히 거칠고 막무가내다. 중·고등학교 ‘사회’와 ‘법과 정치’ 교과서를 집필한 경험에서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교과서는 집필자들이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다. 교육부가 만든 ‘교육과정’에 따라 쓴다. ‘교육과정’은 교과서의 체계와 내용을 국가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한 가이드라인이다. 따라서 현행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고 친북이고 자학사관이라면 그것은 교과서 저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교육과정’을 그렇게 쓴 국가와 교육부와 교육과정 집필자들의 잘못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교육부와 교육과정 집필자들이 좌편향이고 친북이고 자학사관을 지닌 조직과 사람이 되었는데 가만히 있는가? 스스로를 고소하라. 명예훼손 아닌가?
둘째, 교과서 집필자들은 갑이 아니라 을이다. 교과서 집필과정과 검정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내용을 수정한다. 자체수정도 있고 검정위원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인 수정도 있다. 검정위원들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검정통과는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현행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고 종북이고 자기비하적 자학사관이라면 검정위원들도 좌편향이고 종북이고 자학사관을 지닌 학자들이란 말이다. 검정위원들도 국가와 교육부와 청와대를 고소하라. 명예훼손 아닌가?
셋째, 교과서를 쓰면서 자기주장을 쓰는 집필자는 거의 없다. 그렇게 쓰더라도 그 내용은 수정과정을 버티기 어렵다. 자체수정과 검정위원 수정과정에서 거의 걸러지기 때문이다. 교과서 내용은 학계나 교과서 출판계에서 대다수가 인정하는 일반론을 쓰는 것이 관례이다. 그렇다면 우리 학계와 교과서 출판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역사교육 내용이 모두 좌편향이고 친북이고 자학사관이란 말인가?대다수 사람들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진짜 이상한 것 아닌가?검은 백조가 다른 백조들에게 희다고 시비 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넷째,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마음대로 수정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자. 그게 선진국이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 교육은 국가의 백 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임기 짧은 정권이 마음대로 떡 주무르듯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과서를 정치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역사 교과서에 써야 할 판이다.
다섯째,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분명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독재적이다. 시대 퇴행적이고 반동적이다. 정말이지 1987년 민주화 이전 시대, 특히 유신시대와 너무나 닮았다. 역사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고 있다. 슬프게도, 몹시 노엽게도 지금 우리는 다시 유신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근현대사는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에 대한 권위주의와 독재와 반동의 도전을 결국에는 응징해왔다. 정당성도 없고 정의롭지도 못한 권력의 생명줄을 4.19와 5.18과 6.10으로 결국에는 끊어놓은 게 우리 역사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근현대사의 교훈이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볼 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모두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이며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권력이 결국에는 어떻게 역사적으로 단죄되었는지를 보여준 죄인들이자 증인들이다. 그런데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역사의 교훈을 몸소 다시 실천하겠다고 나섰다. 민주주의 교육, 역사 교육을 위해 살신성인하겠단다. 고맙다. 그런데 이런 기괴한 교육은 안 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도, 나라 발전에도 안 좋다. 그러니 제발 이제 그만하자.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는 그냥 사익일 뿐이다. 공익과 공동체는 없다. 나라를 또 다시 두 쪽으로 결딴내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나라가 온통 분열이고 엉망진창이다. 가뭄으로 마실 물도 없고 비정규직과 쉬운 해고와 청년실업으로 먹을 밥도 없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런 민생고에 아예 관심이 없다. 이건 분명 정치가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다. 도대체 일반 시민들은 어디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정상의 비정상화, 고마해라, 너무 마이 묵었다 아이가”

진시원 일반사회교육 교수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