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정부가 검·인정 체제의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을 통합해, 국정 교과서로 발행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2월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 의식”을 이유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향을 제시했다. 교육부는 이미 편찬위원으로 참여할 학자와 현장 교사까지 논의 중이다. 새누리당도 연일 정부 방침에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국정화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2015 교육과정개정안>을 확정고시하려 했다. 확정고시를 앞두고 교사와 역사학자 등의 반발이 잇따랐다. 지난달 2일 서울대 역사 관련 학과의 34명의 교수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며 국정화 반대 의견을 공표했다. 전국의 초·중·고 역사 교사 2255명도 선언문을 내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현재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의 대부분이 우리 역사를 자학적이고 부정적이게 서술하고 있다며 ‘모든 문제를 사회 탓, 국가 탓만 하는 시민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논점을 흐리는 주장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민들이 ‘사회 탓’을 하는 이유는 교과서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가 가진 문제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뿐더러, 나아지리라는 희망조차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애꿎은 교과서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더불어 정부의 독점적인 역사 서술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후퇴하게 만드는 처사다. 헌법재판소 판결에서도 역행한다. 1992년 헌법재판소는 국정 교과서에 대해 위헌은 아니라고 판결했지만, ‘학생들의 창의력 개발을 저해하고, 자유민주주의 기본 이념과 모순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는 국정화 추진 이유로 ‘창의적 사고의 양성’을 들고 있다.

현재 정부가 문제 삼는 것 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서술이다.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유도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실의 언급마저 정부는 ‘북한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판하고 있다. 북한의 독재 세습 체제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국가가 주도해 하나의 역사관만을 가르치려는 모습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북한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몇몇 국가만이 독재 체제 유지나 종교적 특수성 등을 이유로 국정 교과서를 채택했다.
정부가 편향적이라며 지적하는 것의 대부분이 근·현대의 역사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 점령했던 시기와, 광복 후 우리 사회가 만들어져 온 모습과 관련된 부분인데, 모두 현재와 그리 멀지 않은 역사다. 그 시기의 역사를 주도했던 이해당사자들이 생존해있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권 가까이에 있는 이들도 있다. 정권의 성향과 친분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취사선택해 서술할 수 있을뿐더러, 정권의 가치관이 개입된 평가가 이뤄질 수도 있다.
정부는 오늘(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판단은 현재의 우리가 각자 해내야 할 몫이다. 다양한 서술을 통해 역사를 평가하고, 거기서 얻은 바를 통해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부디 정부가 그 몫을 앗아가지 않길 바란다. 

 오나연 대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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