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미디어에서 여성의 재현방식은 정형화되거나 비가시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육아와 출산문제에 대해 중요한 화두를 던졌던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것 같다. 이 프로그램들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여성들만의 문제로 간주되었던 육아 문제를 남성/남편도 함께 수행해야만 하는 것임을 보여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이를 반영하듯이 육아 문제를 다루는 유사한 프로그램 제작도 증가하였다. 실제로 방송 출연자들은 초기의 모습과 달리 집안일과 아이돌보기를 능숙하게 수행했다. 그와 함께 시청자들에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아빠/남편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환기시켜주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출연자들은 회가 거듭될수록 아내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동안 육아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는 ‘눈물 어린, 감동적인’ 장면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듯 대중의 큰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만의 일로만 간주되었던 ‘가사노동’은 사실 남편과 아내, 모두 수행해야 하는 것임을 인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남성의 변화된 모습에만 집중하면서, 항상 집에서 가사노동과 육아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여성은 ‘휴가를 떠나는 모습’으로만 비춰지거나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등 ‘낭만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이나 워킹맘의 어려움을 논하기보다는 기존의 정형성을 탈피한 남편이나 남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한 요리가 직업인 남성들이 많은 프로그램을 채우면서, 여성의 이미지는 사라지거나 정형화되는 방식으로만 재현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새로 기획되는 프로그램들도 여성 패널보다는 남성 중심의 패널이 주를 이루고 있는 추세다. 
이렇게 미디어 속 젠더의 역할과 이미지가 편향적인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우리 사회의 젠더관을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방송에서 다뤘던 우리 사회 속 남성의 삶, 즉, ‘남성들이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얼마나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담론은 오히려 젠더차별이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힘든 이유가 바로 생각 없는 여성 때문이라는 것이 주요한 논의가 되고 있다. 실제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힘들어하는 남성들은 ‘생각 없이 소비하는 여성들’로 인해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여성을 비판/혐오하는 시각이 인터넷상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미디어도 인터넷의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역시 우려스럽다. 개그프로그램의 많은 코너들이 여성을 비하하는 구성을 보여주면서 여전히 비판받고 있다. 문제는 TV 속 세계에서 재현되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관계가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얼마 전 비판받았던 KFC의 지면광고 구성이 이에 해당된다. 고가의 가방을 남자친구에게 사줄 것을 요구하는 여자친구, 그리고 이러한 여자친구로 인해 힘든 남성들을 위로해주는 것이 이 브랜드 제품이라는 것을 모티브로 제품광고가 이루어졌다. IS에 가입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난 고등학생이 SNS에 남긴 메시지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내용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신자유주의 사회, 경쟁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기 너무 버거운 남성들은 자신들의 불안감과 불만을 여성에게 투영하는 왜곡된 방식의 젠더관을 자연스럽게 장착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담론이 미디어에 영향을 미치면서, ‘성평등’을 지향하기보다는 ‘성차별’, 혹은 왜곡된 젠더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듯 보인다. 무임승차자인 여성을 혐오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와 그런 남성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응징하겠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르스 갤러리’의 탄생과 갈등, 대학축제에서도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오원춘 메뉴를 선보이고, 여성을 납치한 남성의 사진이 ‘나쁜남자’라는 타이틀로 대중적 잡지 표지를 장식할 수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젠더관이 나의 불안한 미래의 방해자로 약자를 지목하고, 그들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내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사숙고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종임(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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