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30일, 캠퍼스에는 ‘외적 독재 직선 노예제 반대’, ‘자살공격 악령 사기극 OUT’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대자보 38개가 발견됐다. CCTV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한 남자가 스프레이를 든 모습이 기록됐다. 새벽 어스름이 채 깔리기도 전에 스프레이를 사 들고 이 험난한 오르막을 올랐다니. 현수막 색깔에 따라 스프레이 색에도 변화를 주는 섬세함까지 보여줬다. 혐오를 표현하기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은 그의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은 왜 스프레이를 들게 된 것일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창구가 없어서 극단적인 의사 표현 방식을 택한 것일까? 지난 8월 고현철 교수의 투신 이후, 우리 학교에서는 총장 선출 방식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총장 선출 과정에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학칙이 재개정됐고, 구체적인 총장 선출 방식을 정하기 위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학내구성원 누구나가 총장 선출방식에 대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자보를 게시할 수도 있고 학교 홈페이지나 학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릴 수도 있다. 공청회와 같은 공식적인 의견 수렴의 장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현수막 테러는, 결국 합리적 대화의 과정이 생략된 일방적인 ‘혐오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혐오표현이 넘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혐오를 숨김없이 표현한다. 그것도 아주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학내도 마찬가지다. 캠퍼스에 혐오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학생회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사진이 게시됐다. 그해 9월에는 학내 곳곳에 ‘종북 총학 OUT’과 같은 문구들이 붉게 새겨지기도 했다.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은 더 빈번하고, 웹상의 학내 커뮤니티에서도 혐오표현이 발견된다. 학생들에게 ‘○○충’, ‘김치녀’ 등과 같은 혐오표현들은 이미 일상적인 표현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내뱉는 말이 혐오표현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이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과연 혐오를 표현하는 것 또한 마땅히 보장돼야 할 ‘자유’인 것일까.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적 권리다. 하지만 ‘혐오’의 표현은 단순히 표현 주체의 자율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다. ‘표현의 자유’의 본질은 ‘소수의 의견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타인에 대한 혐오를 자유롭게 표현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공격적으로 구현되는 혐오표현을 자유라는 명제 아래 용인하기는 어렵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혐오표현이 범람하자, 정치권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을 검토하고 있다. 2013년 국회에는 <반인륜 범죄 및 민주화운동을 부인하는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고, 지난 6월에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규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영국과 독일 등 이미 사회적 약자나 소수를 향한 혐오표현을 처벌하고 있는 국가도 있다. 하지만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률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혐오표현의 정의나 범위가 모호한 것도 문제다. 법률적 제재가 마련되기까지는 더 신중하고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는 우리 모두가 ‘혐오표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아니라 ‘혐오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김윤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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