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 주민공동체 사랑방 옥상에서 내려다본 만덕5지구의 모습. 작년 9월부터 LH의 철거 작업이 시작돼 현재는 주거지의 터만이 남아있다

어느 날 가난한 난장이 가족 다섯 식구가 사는 서울 낙원구 행복동 46번지 집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든다. 아파트 입주권을 준다지만 이들에게는 입주할 돈이 없다. 평생 고층 건물 유리창 닦이 등 노동을 해 온 난장이 아버지는 기력이 쇠해진 채 달나라로 날아가는 꿈을 꾼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부산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만덕5지구의 이야기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덕5지구는 오는 12월이면 완전히 사라진다. 사라져가는 만덕의 오늘을 담기 위해 지난달 24일과 지난 1일, 만덕을 찾았다.
 
만덕 5지구 현장르포

만덕5지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을은 주변 풍경에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절하게 쓰러진 건물들의 잔해는 무심하게 우뚝 솟은 아파트들 사이에서 소외된 모습이었다.
마을로 가는 대로는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보이는 것은 철거된 건물 잔햇더미와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알리는 표지판뿐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건물 대부분이 문짝도 창문도 달려있지 않은 빈집들이었다. 길의 경사가 완만해질 즈음에 돌아내려 본 마을의 경치는 참담했다. 가로등과 나무 몇 그루만 어색하게 서 있었을 뿐이었다.

행복했던 우리마을, 만덕 

만덕5지구가 처음부터 황량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생활이 자리 잡은 삶의 터였다. 마을의 뒷산에는 닭의 형상을 한 봉우리 ‘상계봉’이 있었는데, 마치 닭의 날개가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듯한 형상은 주민들의 큰 자랑거리였다. 만덕5지구공동대책위원회 최수영 대표는 “마을 전체에 빛도 잘 들어와 주위 주민들의 부러움도 사고, 상계봉으로 향하는 등산코스를 찾아오는 등산객들도 많았다”고 추억했다.
‘만덕탕’이라는 간판 아래에 만덕5지구주민공동체의 사랑방이 있었다. 원래 그 전에 살던 고금란 소설가가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 두고 떠난 것이다. 사랑방 안은 지난날 마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가득했다. 주민들은 사진을 보며 아래에서 옆에서, 과거 만덕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박정태 (북구, 66) 씨는 “대문이 마주 보는 거리에서 평상 하나 있어가, 저 집에서는 막걸리 이 집에서는 떡 하나하나 가져오다 보면 내도 모르는 사이에 먹을 반찬과 술이 넘쳐 난기야”고 전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 같았다. 마을의 아이들도 어른이 다 같이 키워나갔다. 고병남(북구, 78) 씨는 “우리 마을은 전국에서 최고로 행복한 마을이 될 수 있었제, 가만히 내비두기만 하믄...”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름다웠던 마을의 이야기와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의 기억과 사진으로만 그 자취가 남았을 뿐이다. 

저들에겐 사업터,우리에겐 삶의 터

작년 9월 철거 작업이 시작되면서 마을은 점점 죽어가기시작했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이 떠났고, 마을의 원래 모습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잔해가 가득한 공사 현장, 길가에 홀로 선 은행나무 밑에서 떨어진 은행을 줍는 주민이 있었고, 마을의 맨 꼭대기에는 상학초등학교도 있다. 공사 터가 된 마을은 어린 학생들의 등굣길이자 삶의 현장이었다. 벽에는 낙서마냥 남은 주민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어눌한 글씨로 ‘힘내자’, ‘집 지키자’ 등 문구를 새겼다.
여전히 마을에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공사는 강행되고 있다. 하지만 남은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철거 과정에서 석면 분진이 날리는 것이다.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할 때마다 1급 발암물질 석면 분진이 날렸다. 석면 파편도 철거 현장 곳곳에서 발견됐다. 주민들은 공사를 관리 감독하는 부산노동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지난 6월 노동청은 ‘석면 노출 안전 기준치 미달’이라는 답변만 보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토로했다. 최수영 대표는 “전문가가 아닌 우리 눈으로도 석면이 뻔히 보이는데!”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주민들이 석면 재조사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한 상황이다. 이에 시민단체들도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정책국장은 “방진복과 방진마스크도 없이 철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며 “주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상태다”고 증언했다. 주민들은 집을 잃게 되는 것도 서러운데, 석면 분진까지 마셔야 하는 상황이다. 

“마을과 함께 추억도 사라집니다”

만덕5지구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매주 여러 곳에서 시위도 진행한다. 부산지역 강풍경보가 발효됐던 지난 1일에도 부산광역시청 앞에서 주민들의 시위가 이뤄졌다. 김미경(북구, 38) 씨는 10개월 된 딸 아영이를 업고 나왔다. “시장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저 차가 시장님 차거든예.” 궂은 날씨에도 피켓을 들고 “잠 온다, 잠 온다, 잠 온다”하며 우는 아이를 달래는 김미경 씨의 모습은 애잔해 보였다.
그럼에도 무심하게 날씨는 더 거세지기만 했다.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가려 하는 순간, 때마침 서병수 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구 시장님 만덕 한번 찾아 오이소” 김미경 씨가 환한 얼굴로 악수를 건넸다. 서병수 시장은 고개 인사를 하며 악수를 받아주었다. 하지만 만덕에 찾아오라는 그녀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차에 올라탔다.
시장이 떠난 뒤 한 경비원이 다가왔다. “시위도 그렇다지만, 애를 갖고 나오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CCTV 확인해서 아동학대로 민원을 넣을 겁니다”. 그러자 김미경 씨가 “하이고, 시위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그러면 처음부터 이야기하지 그랬습니까?”라고 맞받아쳤다. 당찬 말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기자가 시위할 때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화를 냈다. “사람들이 한마디 툭툭 던지는 것 있지예, ‘아직도 하냐고 이제는 그만 좀 하라’고 하는 분도 있고예. ‘돈 좀 더 받아 보겠다고 쇼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더.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마음이 막 무너져 내리지예”.
김미경 씨는 태어나서 100일 만에 만덕으로 이사 와 한평생을 마을과 함께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마을 짓는 현장에서 직접 벽돌을 나르기도 했다. “이 집, 저 집 내가 나른 벽돌이라는 기억이 있는데!내가 산 집에서 살고 싶은 것뿐인데...” 그녀의 말에는 절실함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집 역시 철거를 기다리고 앞두고 있다. “이제 내 팔다리 잡고 집에서 끌어내려 들겠죠, 주민 대부분이 노인분들이신데 뭘 어떻게 하겠습니꺼”. 김미경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라지는 것은 집만이 아니에요, 마을에 깃든 기억도, 추억도 모두 사라지는 것입니다”.

   
 (위) 만덕 주민이 마을의 옛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르키며 과거를 추억하고 있다 
(아래) 지난 1일, 시청 후문 앞에서 만덕5지구 주민 김미경 씨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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