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짙푸른 진도 앞바다로 가라앉은 후 1년하고도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해양수산부는 <4ㆍ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 5월 15일부터 세월호 참사 배ㆍ보상금을 지급하고, 지난달부터 선체 인양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말한다. 아직은 치유도, 보상도 말할 수 없다고. 여전히 그들이 거리 위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해수부, 특조위 외면한 채 

선체 인양 
 
  작년 11월 11일, 7개월 동안 진행돼온 세월호 수색이 중단됐다. 선체 내부의 붕괴위험이 있는 데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수색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이 제한적이라는 이유였다. 이후 선체 인양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어졌지만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일부에서 높은 비용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던 탓이다.
  갑론을박 끝에 정부가 지난 4월 22일 인양결정을 공식 발표했지만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업체 결정부터 선체 인양 과정에 이르는 모든 절차에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보안상의 이유라고 밝히며 인양 업체 선정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곤 지난 8월 4일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을 인양 담당 업체로 최종 선정했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인양 일정조차도 특조위에 알리지 않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달 19일 진도 팽목항에서 인양 첫 작업 일정을 진행했지만, 고위 당국자와 취재진에게만 일정을 알리는 등 특조위를 배제한 채 일정을 진행했다.
  문제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진상규명 특별법) 에 선체 인양 과정에서 특조위가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해수부는 번번이 4·16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와 특조위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특조위가 더욱 정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선체 인양 전 수중 촬영 △인양 현장의 바지선에 특조위 조사관 승선 등을 요청했지만 ‘원활하고 안전한 작업 진행을 위해 어렵다’며 거절한 것이다.
 
대답 없는 정부에 
배ㆍ보상 거부 움직임도
 
  결국 단원고 희생 학생과 생존 학생의 아버지들이 나섰다. 가족협의회 차원에서 사고 해역으로부터 1.5km 떨어진 진도 동거차도에서 인양과정을 지켜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1일부터 텐트를 설치해 망원경으로 인양의 전반적인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며, 인양업체가 인양준비작업 기간으로 설정한 오는 11월까지 계속 지켜볼 예정이다.
  가족협의회를 중심으로 일부 유가족은 배ㆍ보상을 거부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온전한 선체 인양과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는 특조위의 입장에 대해 정확한 답변도 하지 않은 채, 정부의 배ㆍ보상의 기준과 절차를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이에 따르라고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배ㆍ보상을 받을 경우 국가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는 조항도 명시돼 있다. <4ㆍ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피해구제 특별법) 제16조에서 ‘심의위원회의 배상금·위로지원금 및 보상금 지급결정에 대하여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국가와 신청인 사이에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한겨레>의 보도에서 “금액을 들먹이며 배·보상을 한 뒤 참사를 덮으려는 정부의 방침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생존자들 트라우마로 고통
 
  참사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유가족들 역시 매일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참사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나 참사에서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단원고 생존학생들의 정신적인 상처가 크다. 4·16 인권실태조사단의 <세월호 참사 4·16 인권실태조사 보고서>(이하 세월호 보고서)에서는 ‘생존학생들은 탈출할 당시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친구들에 대한 기억으로 일상적인 불안증세를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심리 치료는 부실하기만 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린 학생이라는 이유로 ‘격리형 치유’와 ‘통제형 보호’ 대책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참사가 발생하고 많은 학생들이 충분한 설명을 제공받지 못한 채 병원이나 연수원 등에 갇혀 지내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세월호 보고서에서 한 생존학생은 ‘연수원 생활 초반엔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싫었어요. 밥 먹고 검사하고 밥 먹고 검사하고… 그러면 밤 열 시예요. 그럼 자야 돼요. 저희 조 애들은 하기 싫어서 뛰쳐나가고 그랬어요’라고 증언했다. 때문에 생존 학생들 사이에서 심리적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싹트기도 했다.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진도어민, 자원 봉사자 등 역시 심각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세월호 보고서에서 한 자원봉사자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빗소리만 들으면 가족들이 잘못될까 봐… 3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고, 맨발로 뛰어가고, 잠옷 입고 쫓아내려 가고. 이런 것이 트라우마였던 것 같아요’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들은 직접적인 피해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치료 지원에서 소외당하고 있다. 게다가 피해구제 특별법에서 피해자로 규정되지 못해 심리 치료에 대한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심리 치료 지원의 기한은 ‘5년’
 
  그나마 진행 중인 심리적 증상 및 정신질환의 치료와 검사에 대한 지원도 제한적이다. 피해구제 특별법 시행령은 이에 대한 지원 기간을 2020년 3월 28일까지로 한정하고 있다. 정해진 기간 이전에 치료가 끝나지 않거나, 이후에 재발하더라도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정부 대책이 없는 상태다.
  생존자, 유가족, 안산 시민 등을 대상으로 심리 치료를 진행하는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이하 안산센터)의 운영은 당초 정부의 발표와 달리 많이 축소됐다. 현재 안산시가 고려대 안산병원에 위탁해 운영 중인 안산센터를 정부의 주체로 운영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피해구제 특별법 시행령에서는 ‘국가 등이 운영한다고 밝히고, 기타 기관에 위탁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운영 주체가 자주 바뀌게 되면 피해자들의 심리 치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한창우 센터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라우마 치유는 안전한 환경에서 상담사와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치유적 동맹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매년 상담자가 바뀐다면 치유가 어렵다”고 말했다.
 
70% 가까이 삭감된 
특조위 예산… 진상규명 난관
 
  문제의 중심에는 진상규명ㆍ피해구제 특별법과 그 시행령이 있다. 당초 가족협의회가 요구했던 안과 크게 차이가 나는 데다, 진상규명을 진행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특조위의 역할을 제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지원실장 등 핵심 직위에 공무원을 파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특조위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컸다.
  가족협의회와 특조위 측은 시행령 반대 입장을 이어오다, 결국 지난 7월 21일  공무원 파견을 수용했다. 행정지원실장 공석으로 예산을 받지 못해 특조위 활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참사가 발생한 지 517일째인 지난 14일, 특조위는 참사 관련 진상규명 조사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신청 사항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구조·구난작업과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관한 사항 △참사의 원인 규명에 관한 사항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법령·제도·정책과 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 등이었다.
  하지만, 특조위의 활동에 여전히 제약이 많다. 정부가 특조위의 예산을 당초 요구안인 159억여 원에서 절반가량으로 줄어든 89억여 원으로 삭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진상규명과 관련된 예산이 70% 가까이 삭감되면서 수중탐색 등 실질적인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 
아이를 보내줄 수 있다”
 
  524일 전 발생한 참사는 탑승자 중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채 3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았고, 실종자 9명의 시신은 수습도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여전히 왜 소중한 가족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급변침도, 이후 정부가 보인 대처 방식도, 해경의 경찰청ㆍ해군 구조 지원 거절 이유도 이해할 수 없다. 지난달 29일 열린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 국민대회’에서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요즘 왜 자식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여전히 깜깜하기만 한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 아이를 보내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선체 인양, 진상조사 신청 등을 통해 유가족들은 이제야 첫 발걸음을 떼고 있다. 가족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참사로 인한 상처를 치유 받는 길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참사가 발생했던 이유가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또 진상조사를 통해 구조 과정에서의 과실이 드러난 책임자의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온전한 진실이 인양되기 전까지, 유가족들의 상처 역시 구조되지 않은 채 남아있을 것이다.

 

   
지난 1일부터 가족협의회 측이 진도 동거차도에 캠프를 차리고, 망원경을 통해 세월호 인양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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