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여행경로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고미숙 평론가

  지난 16일 국제관 대강당에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강연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 이번 강연은 ‘길 위에서 길 찾기’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여행기의 고전을 소개하며, 인생이라는 길을 어떤 보법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인지를 고미숙 평론가 특유의 생각으로 풀어낸 자리였다.
  고미숙 평론가는 “길 위에 내몰린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나의 목표에만 자신의 상상력을 가둬둔 채 외골수처럼 살아가는 청년들에 대한 ‘도발적’인 외침이었다. 그는 “유동성의 시대인 지금, 한없이 자유로워야 할 대학생들이 오히려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이었던 과거보다 위축돼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며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유연하게 사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금 청년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과 조언을 이어나갔다. 시험공부에 몰두하는 청년들에겐 영혼을 잠식하고 신체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험공부라며, 최대한 짧고 굵게 공부를 끝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펙과 취직에만 전념하는 청년들에겐 “대학생은 지성의 주체”라며 “지성을 잃어버리고 스펙 찾기에만 몰두하다가는 청춘을 잃게 된다”고 충고했다.
  고미숙 평론가는 이러한 청년들의 무기력함과 길 위의 존재가 돼 버린 우리의 인생을 반추하기 위해, 여행기의 고전들을 살펴보기를 권했다. 그가 제시한 여행기는 △걸리버 여행기 △그리스인 조르바 △돈키호테 △서유기 △열하일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각 고전들에 대한 짧은 설명 이후, <돈키호테>와
<서유기>를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됐다.
  고미숙 평론가에 따르면, 스페인을 대표하는 여행기인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별명이 ‘외팔이’였다고 한다.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가 유탄에 맞아 한쪽 팔을 잃는 불운을 겪었던 것이다. 그의 불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전후 귀환 중에 해적선에 납치돼 아프리카에 노예로 팔려갔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세금징수원으로 정착했으나, 곧 경제사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된다. 바로 이곳에서 쓴 소설이 불후의 명작 <돈키호테>이다. 고미숙 평론가는 “한 치의 행운도 없고 불운만이 가득했던 인생이었지만, 세르반테스는 늘 명랑했다”며 “작가인 세르반테스나 작중인물인 돈키호테나 슬프지만 웃긴 묘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운을 의식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 삶을 찾아 끝없이 여행한 작가와 등장인물의 인생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고미숙 평론가는 이를 통해 청년들이 고단한 삶을 여행이라 생각하며, 의연하게 살아갈 것을 주문했다.
  다음으로 소개된 작품은 중국을 대표하는 여행기인 <서유기>다. <서유기>는 삼장법사와 요괴 출신 제자들 그리고 용왕의 아들인 백마가 천축국을 향해 가는 여정을 담아낸 소설이다. 고미숙 평론가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이야기했다. 손오공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유했다며, 자신을 제어하는 수행을 하지 못해 파괴와 분노의 화신이 되었다고 봤다. 저팔계에 대해서는 식욕과 성욕에 찌들어있는 존재로서, 탐욕과 쾌락에 빠져있는 현대인을 놀랍도록 닮았다고 밝혔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오정에 대해서도 소통과 경청이라는 능력이 닫혀있는 현대인과 비슷하다고 했다. 고미숙 평론가는 “탐욕(貪)을 상징하는 저팔계와 분노(瞋)를 상징하는 손오공, 어리석음(癡)을 상징하는 사오정이 탐·진·치의 삼독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수행을 하는 게 이 작품의 진짜 내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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