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명 박사

 

  1950년 10월, 국립과학박물관으로 향하던 한 과학자가 불의의 총격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망한 이는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고스란히 겪은 석주명 박사다. 일제 치하 때는 일본인에게 교수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해방 이후에도 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던 학자 석주명. 그는 이러한 비극 속에서도 연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학자였다.
  ‘나비박사’로 잘 알려진 석주명 박사가 나비 연구를 시작하기 전, 한국산 나비의 조사는 주로 외국 학자들에 의해 진행됐다. 그러나 많지 않은 표본으로 연구를 진행했던 외국 학자들은 개체의 모양이 조금만 특이하더라도 신종으로 단정 짓는 경우가 많았다. 석주명 박사의 끈질긴 연구는 외국 학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그의 연구가 외국 박사들과는 비교도 않을 정도의 많은 개체 채집을 통해 진행됐기 때문이다. 석주명 박사의 회고록 중 ‘나는 논문 한 줄을 쓰기 위해 3만여 마리의 나비를 직접 분석했다’는 문장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그가 만들어 낸 ‘개체변이에 따른 분포곡선이론’은 그의 꾸준한 연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개체변이란 개체들이 환경 차이에 따라 날개 길이 등의 형질이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연구를 위해 우리나라 각지에서 16만 마리가 넘는 나비의 표본을 수집했다. 이후 채집한 나비의 날개 형태나 무늬 등을 하나하나 분석해, 우리나라에서 다른 종으로 발표된 20여 종의 나비가 모두 배추흰나비에 속하는 종이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또한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을 그려내 이를 뒷받침했다. 종 모양의 곡선 하나가 그려지면 그 나비들은 형태만 다른 같은 종이라는 것을 뜻한다. 석주명 박사는 이 곡선을 통해 그동안 외국학자들이 신종으로 분류한 나비들이 개체변이 중 일부라는 것을 밝혀냈다.
  한국산 나비 연구의 오류는 분포곡선이론을 통해 바로잡혀 갔다. 석주명 박사가 10여 년에 걸쳐 조선산 나비를 정리하기 전, 우리나라의 나비 종류는 921종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개체 수는 개체변이를 알지 못한 학자들에 의한 보고였을 뿐, 대부분 동종이명이었다. 그는 연구를 통해 921종의 나비 중 90%가 넘는 개수인 844개의 동종이명을 말소시켰다. 이후 한국 나비의 종류 수를 250여 종으로 정리했다. 놀랍게도 이 수치는 오늘날 한국산 나비의 밝혀진 종수와 비슷해 그의 연구가 비교적 정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주명 평전>을 써낸 이병철 작가는 “해외의 유명한 학자들도 석주명 박사의 연구에 반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당시 외국학자들은 석주명 박사에 의해 오류를 지적받았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병철 작가는 “외국 학자들이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연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석주명 박사 역시 1939년 ‘조광(朝光)’을 통해 자신의 연구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179개의 동종이명을 학계에서 말소시켰는데, 아직까지 아무 항의가 없다”며 “과거의 학자가 얼마나 개체변이를 확대시하고 많은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석주명 박사는 나비뿐만 아니라 우리말에도 관심이 깊었던 학자다. 나비 연구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그는 지역마다 방언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각 지역의 방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은 토종 나비의 한국말 이름 짓기로 이어졌다. 석주명 박사는 각시멧노랑나비, 떠들썩팔랑나비 등 많은 나비에 우리말 이름을 지었다.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문만용 교수는 “일제 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일본 이름의 나비가 많았는데, 석주명 박사가 우리말로 된 나비의 필요성을 느껴 바꿔나가기 시작했다”며 “이 같은 행동은 우리말에도 관심을 가졌던 석주명 박사의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학문 융복합의 선구자 석주명>/윤용택 외 4인 저/2012/보고사

<학문 융복합의 선구자 석주명>/윤용택 외 4인 저/2012/보고사

 <학문 융복합의 선구자 석주명>은 나비학자 석주명 박사를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책은 2011년 석주명 박사 탄생 103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제1장에서는 나비학자 석주명에 대한 전문가들의 글이, 제2장에서는 석주명의 제주학 연구에 대한 글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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