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신들의 영역에 있었다. 밤하늘에 빛나는 달은 신비로움과 숭고함으로 여러 종교의 상징이 됐고, 수많은 예술가들의 마음을 훔쳤다. 지금, 달의 위상은 조금 다르다. 특히 서양 문화권에서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르네상스 시기까지 성모마리아는 종종 투명한 은빛의 보름달이나 초승달 위에 선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 보름달 뜨는 밤 하면 성모마리아 보다는 광기에 휩싸인 불길한 늑대인간이 먼저 연상된다. 우리 사회에서 달이 여전히 풍요와 넉넉함의 상징으로 대우받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보름달이 숭배의 대상에서 B급 문화와 광기의 상징으로 변모하게 된 데는 서구 역사와 문화의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중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한 일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그의 관측 결과는 달의 희미한 얼룩이 지구와 마찬가지로 울퉁불퉁한 지형 때문이라고 알렸다. 달은 닿을 수 없는 천상의 별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구와 닮은꼴인 땅이었던 것이다. 1610년 달은 그렇게 현실 세계의 일부가 됐다. 대항해시대, 유럽인은 대양과 대륙을 건너는 한편 망원경을 쥐고 달 지도를 더 정교하게 그리기 위해 경주했다. 곧 달에 가기라도 할 듯 말이다. 이제 우리는 구글 지도를 열고 손 안에서 달을 이리저리 굴리고 확대하며 보게 됐다.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갈릴레이의 연구를 지지했던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누군가 하늘을 나는 기술을 발명하는 즉시…. 우리 인간 종족 중 그 행성에 정착민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다. 하늘의 산들바람을 이용하는 항해술이나 배를 개발한 것을 감안하면, 그 망망한 우주공간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말처럼 인간은 달에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SF소설의 효시라 할 케플러의 솜니움(꿈)부터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 아서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 빛나는 SF 소설들은 달에 인간이 도달한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상상 속에서 인간은 이미 달의 땅을 밟았다. 그리고 1950년대에 이르러 미국과 소련은 2차대전 이후의 냉전 시대에 달 탐사로 대리전을 치렀다. 포탄만 울리지 않았지 두 나라의 경쟁은 대단했다. 소련이 1957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고, 미국은 다음해에 부랴부랴 NASA를 조직했다. 소련이 1959년 최초의 무인 달 탐사선 루나 1, 2, 3호를 연달아 달로 보냈고, 루나 3호는 인류가 최초로 달의 뒷모습을 보게 된 사진을 전송했다. 절박한 쪽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10년 안에 달로 사람을 보내겠다는 공언을 한다. 그리고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그로부터 또 50여 년이 흘렀다. 우리나라의 달 탐사 계획이 목전이다. 우리는 달에 왜 가는가?우주 개발 시대를 위한 교두보라느니 헬륨3나 희토류 같은 희귀 광물의 보고라며 달을 언급하는 일은 어쩌면 달에 가고 싶은 진짜 이유를 가리는 포장인지 모른다. 달에 가겠다는 인간의 의지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하나 말고는 믿고 의지할 정보가 없던 탐험가들이 망망대해를 건너 항해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산이 거기 있다는 것 말고는 가야할 이유가 없는데 목숨을 걸고 오르는 산악인들의 모험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달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잘 보이는 곳에 있다. 인간은 타고난 모험가다. 어떠한 보상이 없을지라도, 아무 필요가 없을 때조차도 맹렬히 끓는 호기심을 지녔다.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호기심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눈앞에서 매일 밤 실존을 드러내는 달을 보고도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적’이지 않다. 근시안적 경제효과나 정치적인 이벤트로는 달에 이르기 힘들 것이다. 달에 갈 추력은 우주 속에서 지구와 인간을 생각하는 가장 근원적인 호기심일 테니까. 
이소영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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