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위기다. 부산대 70년사에 이런 위기가 없다. 그러니 이 칼럼에서 한가롭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총장직선제에 대한 교수님들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부산대의 미래가 안정적이고 낙관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직선제 지지라는 표면 밑의 흐름은 사뭇 복잡하다. 말은 못하고 있지만 목표가 충돌하고 방법이 경쟁 중이다. 더욱이 직선제의 길이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 팽배하다.
  어렵고 복잡할수록 원칙에 충실하라. 목적이 충돌하고 방법이 경쟁적일수록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순위에 따르라. 옛 어른들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구성원들에게 합의 가능한 원칙과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첫째,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부산대가 갈 길을 정하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갈등과 충돌을 관리하는 부작용 없는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등과 충돌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민주적 방식과 민주주의 가치만큼 다수가 공유하는 것도 없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도 아니고 지고지상의 절대가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대체할 만한 제도와 가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 구성원들이 합의 가능하고 부작용이 가장 적은 길은 민주적 방법과 민주주의 가치다. 민주적 방법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의미하며, 민주주의 가치는 구성원 모두의 평등과 자유, 인권이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교육부가 강제한 간선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교육부 간선제는 분명  비민주적이다. 우리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총장선출 제도는 민주적 방법과 민주주의 가치에 복무해야 하고, 그럴 경우 어떤 제도이건 도입될 자격이 충족된다. 갈 길을 민주적으로 정하고 따르는 것이 부산대의 살 길이다. 민주주의를 거부할 사람은 우리사회에 극소수에 불과하다.
  둘째, 부산대가 국립대다운 면모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부산대에 대한 부당한 외압과 자존심에 대한 상처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곤란하다. 주권의 대리인인 관료들이 주권자 국민의 예산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며 국립대학을 부당하게 겁박하는 일은 민주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일이 민주화 30여년이 지난 작금에도 대명천지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은 명백한 관료독재다. 반민주적 상황이다. 국립대에 대한 국가예산지원이 서울 사립대에도 못 미치지, 지방대에 대한 무관심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국민의 예산을 미끼로 가난한 국립대를 겁박하는 일은 상식 이하의 일이다. 고등교육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교수사회의 자율성과 자성능력에 대한 근시안적인 불신과 비판을 물리쳐야 한다.  교수사회가 이기적 파벌집단이고, 스스로를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할 능력을 상실한  집단이라는 낙인은 과도한 모욕이자 과장된 처방이다. 이를 교수사회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교수사회의 자율성과 자성능력을 대내외에 확인하기 위해서도 민주주의를 세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총장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만드는 교내 민주화 작업은 필수적이고 우선적인 과제다.
  넷째, 무능과 무책임과 거짓과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준 사퇴한 총장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위기극복 이후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지만 우선은 사퇴한 총장이 연구년 가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 구성원들은 살아남은 자로서 고현철 교수에 대한 강한 책무를 느끼는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다. 책임과 당위, 현실과 불안 사이에서 깊게 고민 중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책무와 당위를 벗어나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현실만을 따르고 불안을 두려워만 한다면 그것은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 부산대인이 지향하고 가르치는 인간상이 아니다.
  위기는 기회다. 부산대와 고인과 산 자가 모두 사는 길을 가자. 그것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길이다. 민주적 절차로, 민주주의 가치로 가자. 고인이 바라는 것도 민주주의 아니던가? 반민주의 길은 부산대의 길이 아니다. 누가 해방될 줄 알았나? 해방 70년이다. 부산대 70년이다. 큰 100년을 보자.
진시원 일반사회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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