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목숨을 다한 사람들의 영을 기리는 공간, ‘먕향의 동산’.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는 시신이 없어 비명(碑銘)도 없는 묘가 있다. 비명 없는 묘 주인의 시신은 바다 너머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둘 이상의 혼령을 한곳에 모아 제사를 지냄)되어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징병된 조선인 남성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이희자 씨의 아버지다.
  <안녕, 사요나라>는 한국 감독과 일본 감독이 함께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야스쿠니 신사를 포함해 태평양 전쟁의 흔적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한 나라의 시선이 아닌 양국의 다양한 시선을 조명한다. 작품은 한국인 이희자 씨와 일본인 후루카와 마사키 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희자 씨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징병으로 아버지를 일본에 빼앗겼다. 그녀가 자란 후,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나서 도달한 곳은 야스쿠니 신사였다. 아버지가 그곳에 전쟁 영웅으로 합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희자 씨는 합사 취하 소송을 제기한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또 다른 축인 후루카와 마사키 씨는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이희자 씨와 만난다. 마사키 씨는 이희자 씨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한을 보게 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마사키 씨는 한국인의 피해 보상을 위해 재판 지원회를 조직하여 활동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전쟁의 흔적을 찾아 따라가는 모습을 비춘다.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의 마음도 이희자 씨와 같이 동요한다. 태평양 전쟁으로 두 오빠를 잃은 요시코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일본도 전쟁의 광기에 똑같이 희생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러다 ‘태평양 전쟁은 서양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한 것’이라 주장하는 우익 단체 대표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다시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이희자 씨에게 자신들이 잘못 했다며 용서해 달라고 우는 젊은 일본인들을 보면 마음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이희자 씨와 마사키 씨는 중국으로 떠난다. 과거 일본군의 병원이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이 있는 곳이라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이희자 씨는 그 곳에서 제사상을 차려 술잔을 따라 절을 한다. 절을 하고 일어나는 순간 그녀는 울음을 터뜨린다. 이 곳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희자 씨는 일본 젊은이들의 미안하다는 말과 눈물에, 맺혀있던 한이 조금씩 풀린다고 말한다. 일본에도 우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고, 해결하려 같이 노력하는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영화가 끝나도 관객의 마음은 편치 않다. 해결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간에 나타나는 위안부 문제나 대동아성전비 등의 태평양 전쟁이 남긴 문제들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다. 영화 역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일본에서도 전쟁에 대한 반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아직 망향의 동산에는 비명 없는 묘가 있다. 그의 이름이 새겨질 때까지 이희자 씨의 한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지만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묘의 이름을 찾을 때까지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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