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에 치러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여·야당의 입장 차이에 더해 농촌과 도시, 수도권과 영호남 등 지역별, 개인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논의는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선거제도 변경을 다루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제도 변경은 정치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정치 문제점의 상당 부분이 선거제도와 연계되어 있으므로 이를 바꾸는 것이 곧 정치개혁이라는 논리이다. 물론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선거제도는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만 바꾸면 정치가 확 달라지는가? 꼭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여하튼 현재의 논의는 선거제도의 변경이 정치를 바꿀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현행의 선거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적어도 이론적인 측면에서, 국회에서의 다수당의 횡포, 여론을 무시한 불통의 정치, 비리나 자질미달 의원들, 극심한 영호남 지역구도 등의 문제들은 승자독식의 선거방식인 소선거구제(1구 1인)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소선거구제는 표의 비례성과 등가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예로,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2.8%의 득표로 50.7%의 의석을 차지했으며, 사표(낙선자에게 투표한 표)의 비율은 절반 가까이에 이르렀다. 또한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고착된 독점적 지역구도가 깨지기 어려우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기에 정당수뇌부만 바라보며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자질미달 정치인이 양산된다.
  그러면 어떻게 바꾸자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시민단체(2015정치개혁시민연대) 측은, 사표를 줄이고 대표성을 높이는 것, 독점적 정치구조를 깨는 것,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되찾는 것을 정치개혁의 3대 방향으로 제시하며, 의원정수 증대,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 정당설립요건 완화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기득권 정당이나 의원들은 의견이 갈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지역구 의석을 줄이거나 비례대표를 늘리는데 반대하면서 오픈프라이머리(국민경선제)의 채택을 내세우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지역독점구조 완화를 위해 권역별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줄곧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정의화 국회의장이나 안철수 의원 등은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이라는 큰 틀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각자 자신들의 방안이 한국정치를 쇄신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신념으로 포장된 이해타산이 깔려있다는 점은 쉽게 추론된다. 아마도 논의의 결과는 여야가 적당히 타협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선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개혁의 대상인 자들에게 개혁을 맡겨 놓았으니까.
  여기서 우리는 정치권의 논의와 달리 주권자의 입장에서 대의제와 대표의 원리 자체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주권자인 국민은 직접 정치에 참가하지 않고 대의제를 택하게 되었는가?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기에는 현대정치의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은 그 중요한 이유이지만, 여기에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의 분업화·전문화와 같은 논리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즉, 대다수의 국민은 우매하여 자신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으니까 전문성을 갖춘 대표를 뽑아 정치를 전담케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대표에는 ‘대리(delegate)’와 ‘위임(mandate)’의 방식이 있다. 전자는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의견을 반영해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것이며, 후자는 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받아 자신의 소신이나 정당의 의견을 좇아 의사결정을 행하는 것으로 현재 다수의 유권자가 인식하고 있는 대표의 원리다. 정치는 정말 전문가만이 할 수 있으며 대표는 위임대표여야 하는가? 주권의식과 참여의식이 높은 유권자들이라면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의민주주의가 노정하고 있는 대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대표를 추첨이나 순번제로 뽑거나 대표의 역할을 대리인으로 한정하여 유권자의 정치참여를 강화하자는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모름지기 정치개혁이라 함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대의제나 대표의 원리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봉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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