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구실과 강의실 밖으로 나섰다. 강의실 밖에는 나무들 사이로 육중하지만 볼품없는 강의실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 건물을 벗어난 사람들이 주린 배와, 마른 목과, 외로운 마음을 채우기 위해 빵과 커피를 들고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나 역시도 답답한 연구실과 강의실을 벗어나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친구가 그립다. 그리고 부끄럽다.
  2015년 8월 17일 오후 3시 5분. 한 사내가 혼자 허공에 섰다. 그리고 근래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부끄러움을 잠시 느끼고, 그렇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며 자신의 몸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향해 내던졌다.
  한 교수의 죽음, 한 시인의 죽음, 한 사람의 죽음, 한 생명의 죽음. 이 시대의 비극이라고 신문들은 대서특필했다. 비극은 어디에 있는가? 2014년 4월 304명의 어린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제주에서 희망을 찾으며 일하러 가던 사람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가녀린 숨을 거뒀다. 어제도 오늘도 소리 소문도 없이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도 배고프고, 목마르고, 친구가 그리웠을 것이다. 비극은 끝났는가?
  어느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보며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나무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무심히 흩어버릴 잎들을 왜 그리 희망차게 피웠냐고. 떨어진 나뭇잎들이 내 곁을 떠났던 사람들처럼 보였다. 올가을엔 또 얼마나 많은 잎들이, 생명들이 떨어지고 바람에 흩날릴까?강의실 밖에도 슬픔이 가득하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강의실에서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나 보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나?
  고현철 교수님의 죽음이 부끄러운 나의 일상을 바꾼 것이 있다면, 매일 저녁 해 질 녘 어스름이 밀려올 때 인문관 필로티 광장으로 나가게 한 것이다. 강의실 안도 바깥도 아닌 그 공간에서 나처럼 강의실과 연구실이, 떠들썩한 거리가 어색해진 사람들을 만났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한 생명의 희생을 애도하고 추모하며, 살아남은 자신들의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했다. 때로는 울먹이며, 때로는 울분에 찬 소리로, 때로는 침착한 논리적 언변으로, 때로는 춤으로, 노래로, 각자가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그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강의실 안팎에서 듣지 못했던 진실한 것이었고,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왜 그동안 우리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억누르며 살아왔을까?그것이 당신께서 이야기한 교묘하게 무뎌졌던 민주주의 의식 때문이었을까?故고현철 교수님의 희생으로 이제 우리는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앞에 나와 울고 있는 어떤 이의 모습은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 같았고, 아프고 슬프지만 희망을 찾아가자고 다짐하는 모습도 어디에선가 찾고 싶은 내 모습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동안 잃어버렸던 우리의 인간다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이젠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의 동료였고, 선배였고, 후배였고, 스승이었던 한 사람, 고현철 교수님의 시 구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내 어찌 여기서 끊겠는가/ 그동안 어렵사리 길들여 온/ 지겨운 이 길을/ 흙먼지 날리는 이 길을/ 헤엄쳐 가지 않겠는가. - 고현철 <평사리 송사리> 中에서
 
당신이 혼자 헤엄쳐 왔던 길, 흙먼지 날리는 그 길을 이제 우리는 함께 헤엄쳐가야 한다. 혼자 가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길이겠지만 함께 하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손에 손을 맞잡고 가슴 가득 햇빛 내비치는 깊은 물을 만날 때까지 쉼 없이 헤엄쳐가자. 무한 경쟁의 늪에서 스스로를 얽어매었던 불안과 욕심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여럿이 함께 모여 자유롭고 슬기롭게 자유와 진리의 세상으로 쉼 없이 헤엄쳐가자. 그것이 우리 스스로의 비극을 멈추고 현재의 절망과 불안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유, 진리, 봉사의 전당, 부산대학교에서 우리 함께 헤엄치자.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이동훈(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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