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항일운동파 저격수 안옥윤, <베테랑>의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비밀 요원 에단 헌트. 올 여름 한국 극장가를 접수한 영웅들이다. 영웅이란 홀로 빛나는 존재라지만, 지금 도착한 이 영웅들에게는 더불어 빛날 동료가 있다. 그들은 공히 고전적인 단독자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보다는 진정한 팀 플레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통합형 리더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물론 대중의 관심은 그보다 서사적 쾌감과 화려한 액션에 집중되곤 한다. 그중에서도 스타의 육체가 빚어내는 운동의 쾌감은 대작 상업영화가 지닌 매혹의 본원이라 할 만하다. 말하자면 액션은 이런 영웅 서사의 시작점이자 종결점이다. 그런데 여기에 쾌감의 종류가 좀 다른 영화가 있다.
민낯의 전지현이 장총을 든 채 와이어를 타고, 허허실실의 황정민이 슬랩스틱 액션으로 악당들과 합을 겨뤄도, 그 곁에 톰 크루즈를 세워놓으면 우리의 영웅은 너무 소박해지고 만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액션은 다른 차원에 가있다.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를 연기할 때마다 언제나 가학적일 정도로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긴 했다. 그는 전작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에 매달린 적이 있다. 이번에는 급기야 날아오르는 비행기 기체에 매달린다.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나는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고 딴 생각을 했다. ‘저건 진짜야, 진짜로 비행기에 매달린 거라고’ 그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케하는 전능한 요원, 에단 헌트가 아니라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 일을 하겠다고 나선 무모한 배우, 톰 크루즈였다. 그는 대체 어디까지 갈 참인가?영화에서 실감이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인가?
영화는 환영의 예술이다. 진짜를 보여줘야만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그저 진짜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는 허구의 세계다. 더 결정적으로는 우리의 눈은 그 ‘진짜’와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만약 그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한 채 그걸 보았다면 어땠을까?그래도 그게 진짜임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우리의 눈은 생각처럼 그렇게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물론 실제 그대로 찍은 것과 속임수를 사용한 것 사이에는 영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만약 그 장면을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냈다면, 롱쇼트로 길게 이어지는 지금 장면과 달리 다양한 각도의 근접 쇼트들이 덧붙었을 것이다.)
‘진짜’ 액션으로 말하자면, 미국 슬랩스틱 코미디의 거장 버스터 키튼이 대선배다. 그는 고층빌딩 사이를 건너뛰다 빌딩 벽을 타고 미끄러지고, 넘어가는 전봇대 끝에 매달리고, 폭포에서 공중곡예를 하고, 자신을 덮치는 집채 사이에서도 살아남았다. 3살 때 이미 낙법을 익혔다는 이 미친 천재는 아크로바틱 스턴트의 전설이 되었다. 물론 무성영화기의 일이다. 위험한 묘기를 보여주려면 실제로 그렇게 찍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키튼의 영화는 지금 봐도 온갖 종류의 신음과 탄성을 부른다. ‘와아, 어어, 으윽, 휴우...’
디지털 시대는 우리의 감각체계도 바꾸어 놓았다. 우리의 눈은 더 이상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을 구분하지 못한다. 환상과 현실은 경계없이 뒤섞이고, 스크린에 재현된 가짜는 우리 눈앞의 진짜를 뛰어넘는 생생함으로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가상 이미지가 실제 이미지의 실감을 능가하는 하이퍼리얼리티 시대에 톰 크루즈는 무성영화기로 회귀하려는 참인가. 이 배우의 용기와 프로패셔널한 태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차라리 주인공 에단 헌트의 존재감을 압도하는 여성 스파이 일사 파우스트에게 자신의 자리 절반을 기꺼이 내어준 대목이 아닐까.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은 비행기 스턴트가 아니라 스파이 영화 역사상 가장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으로 기억될 영화다.

 강소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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