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술의 한 방법인 사상사는 실제 일어난 사건과 사료뿐 아니라 사건에 대한 당대와 후대 사람들의 감정이나 믿음, 열망 같은 것도 포괄하여 담고자 한다. 어떤 영화가 한국인들의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면 그런 현상 역시 가치 있는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영화 <암살>로 다시 환기된 친일파 청산 문제는 공적인 차원이든 사적인 차원이든 더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친일파 청산 문제와 더불어 항상 제기되는 건 일제 때 붙여진 명칭 바로잡기다. 창경궁의 위상을 낮추려고 동물원을 만들고 ‘창경원’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든지, 주요 산들의 최고봉을 가리키던 ‘천왕봉’이 일제강점기에 ‘천황봉’으로 뒤바뀐 것들을 바로잡자는 움직임인데 차근차근 원래 이름을 되찾고 있는 중이다.
사소하게는 전철역 이름을 정하며 불거지는 지역 주민 간 갈등부터 시작하여 거대하게는 국가 간 영유권 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에서 이름 붙이기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영화 <스타워즈>에는 시스족의 군주인 다스 시디어스가 아니킨에게 ‘다스 베이더’라는 이름을 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짓는다든지, 스승이 제자에게 아호를 붙여 준다든지, 과학자가 새로운 현상이나 물질, 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자기 이름을 따서 명명한다든지 하는 것은 창조주 또는 발견자의 특권 같은 것이다. 1856년 도이칠란트의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된 인간류 화석에는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라는 이름이 붙고, 2002년에 학계에 보고된 새로운 공룡(익룡) 화석이 해남이크누스라고 명명되었듯 발견지의 이름이 부여되기도 한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지역부터 인디아에 이르는 정복 활동을 펼치며 여러 도시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현재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다.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의 첫 이름은 비잔티움인데 그곳에 도시를 세운 정복자인 비자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노플이 되었다.
역사상 인물이나 사건의 명칭은 후대 역사의 전개에 따라 종종 바뀐다.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후대의 영어권 사람들이 재규정한 이름이다. 이탈리아 반도의 제노바 공화국 출신이므로 그를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라고 고쳐 불러야 마땅하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서 활동하면서 ‘크리스토발 콜론’이라는 이름도 썼으므로 그렇게 불러도 어색하지는 않다. 항해가 마젤란을 일컬을 때 요즘에는 괄호를 열고 원래 이름인 ‘마갈량이스’를 병기하기도 하는데 원래 이름인 단일 표기로 정착돼야 할 것이다. 콜롬보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이 인도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에스파냐어로는 인디오)이라고 부른 것도 그 때문이며, 카리브 일대 지역의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괴상하게 부르게 된 것도 그 탓이다.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콜롬보가 발견한 땅이 ‘신대륙’이 아닐 수도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던 인물이다. 그는 노력에 비해 과분한 이름 하나를 부여받았다. 유럽의 저명한 지도 제작자인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자신의 세계지도에 유럽인들이 새로 알게 된 대륙을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본따서 아메리카라고 표기한 것이다. 발트제뮐러는 나중에 후회를 했으나 이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익숙해진 명칭은 되돌릴 수 없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2001년에 천만 달러를 들여 아메리카가 표기된 발트제뮐러의 지도를 구매했다. 출생 신고서를 찾아온 셈이다. 이름을 얻어야 명분도 생기기 때문이다. 중국이 백두산을 국제 사회에 ‘장백산’으로 홍보하는 것처럼, 이 모두 자국에 유리한 ‘역사 만들기’의 일환이다.
현재 칠레의 영토인 ‘파스쿠아’ 섬은 예전에 ‘이스터’ 섬이었다. 에스파냐어인 파스쿠아는 영어인 ‘이스터를 직역한 것으로 모두 부활절이라는 뜻이다. 유럽인이 부활절에 이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섬에 살던 원주민은 자기들 땅을 ‘라파누이’(커다란 땅)라고 불렀다. 라파누이 사람들은 칠레에서 독립하기를 원하고 있다. 북아메리카 최고봉의 현재 명칭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의 이름을 딴 ‘매킨리’인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꾸준한 청원이 받아들여져 ‘드날리’(신성함)라는 제 이름을 찾았다. 자연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간이 사물과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역사 인식의 변화도 명명법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강룡 역사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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