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혁명가 이종률

 
  민족일보 사건. 이 사건은 박정희 군사정부에 의해 ‘민족자주’, ‘평화통일’ 등을 주장한 진보적 언론이 탄압당했던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반공을 국시로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부가 4·19 혁명 이후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는 ‘친북 활동’의 혐의로 민족일보의 사장 조용수에게 사형, 민족일보라는 제호를 지었던 당시 편집국장 이종률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다. 그러나 2006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재판이 잘못됐다며 법원에 재심을 권고해 진실 규명의 단초를 연다. 
  군사정부세력이 이름 붙인 이른바 ‘친북 활동가’ 이종률은 1905년 경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이규환에게서 주자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을 받았던 그는 1921년이 돼서야 경북 의성의 점곡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 신교육의 세례를 받게 된다. 이 시기 ‘반봉건’에 눈을 뜬 이종률이 의성의 한 백정마을을 찾아가 절을 올린 사건은 마을의 전설로 남아있다. 전국 40만 명의 백정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1923년 설립된 형평사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었다. 
  이후 이종률은 독립운동가 계열이 설립한 동명학교를 거쳐 많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다녔던 배제중학에 진학하게 된다. 이 시기 그는 북풍회라는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 참여하고, 1925년 최초의 사회주의 학생단체인 공학회를 설립했다. 공학회는 학생비밀결사운동의 시초가 된 단체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주도세력이었던 성진회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발로 뛰었던 이종률은 6·10만세 운동에도 참여했다. 이후 민족주의계-사회주의계 간의 합작 단체인 민흥회와 신간회에 가담했고, 1927년 도일한 이후로도 신간회도쿄지부를 창립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1928년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도 실현을 위해 전국적인 학생들의 동맹 휴학을 사주했다는 ‘학생맹휴옹호전국동맹사건’으로 일제 당국에 의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다. 일제에 의해 불령선인으로 요시찰 대상이 된 이종률은 그 이후 몇 차례의 수감과 석방 와중에도 사회주의·독립운동을 지속했다.
  광복 이후 ‘독립운동가’ 이종률의 삶은 더 극적이다. 그는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산에 정착해 우리 학교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 또 그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4·19 혁명 시기에는 민족통일연맹(민통련)을 조직하여 평화통일 운동을 벌이고, 민족일보를 창간했다. 이런 독특한 삶의 이력들이 그만의 독특한 사상을 이끌어 내는 데, ‘민족혁명론’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의 혁명은 계급이 아니라 민족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한국적 적용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반봉건, 반외세, 반민족매판자본의 3반(反)이 중요하다고 보고 민주적 사유재산제도에 바탕을 두었다. 여기에 민족자주적인 기계제 공업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서민성자본주의민족혁명(민족혁명)’을 주장했다. 이종률의 제자였던 김선미(사학) 강사는 “무산청년층이 중심이 된 민족무산자계급이 주도권을 갖는 것이 민족혁명론의 요체”라며 “당시 후진 지역이었던 한국에서 자본주의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에 이르는 과정을 ‘한국적으로’ 새롭게 제시했다”고 말했다.

  1974년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이종률은 1989년 삶을 마감한다. 김선미 강사는 평생을 사상가이자 혁명가로 살았던 그의 삶을 ‘신념의 화신’과 같았다고 밝혔다. 2005년 우리 학교에서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10·16 기념관 앞에 기념식수와 표지석을 건립했다. 한편, 2013년 법원은 52년만에 선고를 번복하며 ‘친북 활동가’ 이종률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민족혁명론>
이종률 지음/1989/들샘

 이종률의 유고를 동료와 제자들이 모아 책으로 펴냈다. 그의 사상이 무엇인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산수 이종률 민족혁명론의 
역사적 재조명>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지음/2006/선인

동 제목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됐던 이종률에 관한 논문을 엮은 책이다. 연구자들이 비교적 쉬운 서술로 이종률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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