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배낭여행 이틀째였어요. 길에서 만난 어떤 사람과 친해진 지 세 시간 만에 덜컥 여행경비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빌려주었지요. “ATM에서 돈 뽑아서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줄래?”라는 말을 듣고 낯선 거리에 덩그러니 서서 기다린 지 4시간째, 비가 오기 시작하고 나서야 사기당한 걸 깨닫고 눈물이 났어요. 사기를 당한 것보다도 아픈 건 그깟 돈 때문에 내 마음을 배신했다는 사실이었어요. 저려오는 다리, 억수같이 붓는 소나기, 어두워지는 낯선 골목, 너덜너덜해진 마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던 그때, 꺼져가는 배터리를 붙잡고 간신히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 친구는 ‘왜 그랬어?’라는 말 대신 “좋은 마음으로 간 곳에서 속상했지? 괜찮아, 세상에는 널 아끼고 걱정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하고 말해주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4시간을 기다리던 골목을 미련 없이 떠났죠.
그날 밤은 매일 쓰던 일기 대신, 내가 좋아하는 시들을 잔뜩 옮겨 쓰며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었어요. 사실은 모든 게 나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었어요. ‘여자 혼자 간 여행에서 겁도 없이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 게 말이 되니’, ‘그렇게 덜컥 사람을 믿으면 어떡하니’, ‘처음 본 사람에게 왜 돈을 빌려 주었니’ 하고 수십 가지의 이유들로 나를 꾸짖을 수 있었지만 대신 나는 “괜찮아”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나를 안아주고 또다시 여행을 떠나니 모든 게 정말로 괜찮아졌어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 노래하는 시처럼,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것 마냥 낯선 이들에게 마음을 주고, 함께 노래하고, 그들이 가진 감성을 깊이 사랑하였지요. “괜찮아”라는 말이 없었다면 나는 마음을 꽁꽁 싸매고 닫아 어떤 사람도 사랑하지 못했을 거예요. 단 한 사람 때문에, 남은 3주간 수십 명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스쳐 보냈겠지요. 그 뒤,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를 아프게 하려 할 때마다, “괜찮아” 하고 작게 되뇌었지요. 내가 따뜻한 용기를 잃지 않도록 그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어요.
왜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그토록 관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어 하면서 스스로는 단 한 번도 안아주지 않는 걸까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이토록 많은데, 왜 나조차도 나를 안아주지 않는 걸까요. 사실 지금 너, 여기서 온 힘 다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고, 그러니 다 괜찮다고 말해줄 수는 없는 걸까요?
어느 날 골목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책 생각이 나요. 그 책은 시종일관 “괜찮아” 라고 말하고 있었고, 그게 책 내용의 전부였어요.
“가시가 또 생겼어요” - “괜찮아”,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 “괜찮아”, “우린 서로 달라요”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요. 그러니 이제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줄래요.

 김경미(영어영문학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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