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혼자 가는 남자, 두 남자 친구의 전시회 관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장면이다. 데이트 코스로 여자 친구를 따라 온 남자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온 부모나 방학 숙제를 위해 찾는 학생들도 있지만 미술관은 여성들의 전용 공간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여성과 남성의 문화적 취향이 다르기 때문일까. 플로렌스 포크는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를 통해 싱글 라이프(single life)의 장점에 대해 살펴본다. ‘혼자인 것이 외로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고립이나 소외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고독은 선물이며 자기 자신을 위해 고민하고 성장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남성과 달리 여성은 음악이나 그림을 통해 상처를 어루만진다. 이성보다는 감성 영역이 발달한 탓도 있겠지만 정적이고 사색적인 여성의 본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화가는 왜 대부분 남성일까.
  보통 여성은 미술 생산자가 아니라 재현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여성의 신체가 주는 아름다움이나 생명 탄생의 신비스러움보다 권력의 문제였다. 휘트니 채드윅은 <여성, 미술, 사회>를 통해 여성 미술가에 대한 여러 쟁점들을 역사적 측면에서 정확하게 분석한다.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된 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독립적 존재로서 자기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나 될까.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스물한 살이나 많은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면서 더욱 프리(free)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소아마비로 시작된 그녀의 육체적 고통은 일곱 번의 척추 수술, 세 번의 유산, 오른쪽 발가락 절단과 무릎 아래 절단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디에고에 대한 사랑은 숙명처럼 프리다를 지배한다. 프리다는 디에고가 연인이며 아기였고 우주였다고 고백한다. 또한 프리다는 ‘내가 그린 것은 결코 꿈이 아니라 나의 현실’이라는 말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설명한다. 리얼리스트였던 프리다의 예술 세계는 ‘폭탄을 둘러싼 리본’이라는 앙드레 브르통의 평가처럼 결코 아름답지 않은 현실이었으며 화려한 장식을 벗겨낸 고통의 산물이었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신체 때문에 수많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현실을 그려냈던 프리다의 그림은 관람객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조건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거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선택의 폭은 넓지 않고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다.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적 제약과 심리적 두려움이 더 크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여성주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프리다의 그림은 자신이 처한 숙명, 신체적 제약,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사랑을 통해 관람객들의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현실은 어떠한가.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적 문화자본’이 없는 사람은 미술관을 찾지도 않을 것이며 전시회에 갈 이유도 없다.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프리다 칼로 전시회는 프리다의 이름을 빌려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과 멕시코 근대미술 몇 점을 소개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 공연과 전시회는 프리다 칼로 전시회처럼 예술적 감수성이나 문화적 체험 대신 전시회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한다. 다른 전시회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리다 칼로 전시회는 자유롭지 못한 육체적 조건과 여성으로서의 한계뿐만 아니라 지역성, 차별성, 접근성에 대한 부자유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들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문화적 계층 구조는 남성과 여성 이전의 문제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전시회를 찾아볼까. 어디로 가야할까. 혹시 길을 잃고 헤맨다면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볼 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프리(free)하지 못하게 살았던 프리다 칼로보다 우리들의 삶이 훨씬 더 프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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