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에서 원자폭탄(이하 원폭) 피해를 입은 조선인들. 광복을 되찾은 지 70년이 됐지만 원폭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아직도 고통 속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적 지원과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폭 피해자 수가 세계에서 2위인 나라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피폭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에 한국인 7만 명이 거주 중이었다. 그들은 식민지배와 수탈을 피해 떠났거나 강제동원 당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 4만 명이 원폭투하 직후 사망했고, 살아남은 3만 명 중 2,600명이 현재 국내에서 생존 중이다.
  원폭 피해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자손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13년 발표된 <경상남도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폭 피해자 1·2·3세(표본 1,125명) 중 20.2%(161명)가 본인이나 자녀 중에 선천성 기형 또는 유전성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1세의 경우 23.4%(126명)가, 2세의 경우 13.9%(34명)가 유전성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고 이후 70년, 피해자 집계조차 못한 국가

  국가차원의 명확한 피해자 실태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상남도가 2013년 실시한 실태조사마저도 효용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의료 진찰이나 방문없이 우편으로만 설문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합천평화의집 안재은 총무팀장은 “피해자 중 장애인과 노인이 많아 우편 설문으로는 제대로 된 답변을 얻기 힘들다”며 “심지어 경남에 거주하지 않는 피해자들은 아예 집계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결국 유의미한 수치는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조사한 자료뿐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피해자와 관련한 수치는 모두 1972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가 조사한 것이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합천지부 심진태 지부장은 “지금껏 국가 차원에서 명확한 실태조사가 없었다”며 “원폭 피해자들에 무관심한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지원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한국인 원폭 피해자 특별법 관련 연표

  2008년 일본에서는 ‘재외 피폭자 원호법’이 제정됐다. 이에 근거해 대한적십자사가 일본 정부의 위탁을 받아 국내 원폭 피해자를 돕고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많은 실정이다.
  피해자들이 의료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일본 대사관에서 지급하는 ‘피폭자건강수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첩의 지급 절차는 ‘신청 서류 작성→일본 대사관 접수→일본심사 및 결과 안내→일본 대사관 방문→수첩 교부’ 순으로 복잡하다. 심지어 신청 서류에는 당시 피해를 증명할 자료도 필요하다. 대한적십자사 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수한 과장은 “원폭 투하 후 시간이 많이 흘러 그 자료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원폭 피해자 2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피폭으로 인한 유전 질환이 있어도 지원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피폭자건강수첩 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직접 피폭자’이거나 ‘그 지역에 있었던 사람’, 또는 ‘피해 당시 태아였던 사람’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피해 이후에 수정된 태아의 경우, 지원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강수한 과장은 “피해자 자녀의 경우 심혈관 질환 등의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질병의 발병률이 더 높다”며 “그러나 원인규명이 되지 않아 실질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어렵게 건강관리수첩을 지급받아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소득 기준으로 원호 수당이 결정되는데, 피해자가 기초수급자인 경우는 수당을 지원받으나 마나다. 중복 수혜가 불가능해 원호수당을 받으면 기초수급비가 끊기기 때문이다. 이에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는 “원폭 피해는 소득이 많고 적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원 기준에 소득분위가 포함돼 있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무관심의 바다 위 10년 째 표류 중인 특별법

 원폭 피해자들은 2011년부터 국회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업무 누적을 이유로 특별법 심의절차를 미루고 있는 상태다. 관련단체는 국가의 관심도가 적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준현 대표는 “원폭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2013년 특별법을 발의했던 정의당 김제남 의원 역시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매우 미미하다”며 “한·일 외교관계에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며 오래 전부터 외면하고 있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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