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흰색 종이가 나부꼈다. 곧이어 한 사람이 떠났다. 지난 17일의 일이다. 우리에게는 故 고현철 교수의 유서가 남겨졌다. ‘무뎌진다’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등장하는 그의 유서는 곧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경고였다. 그의 희생으로 우리학교는 교육부의 직선제 폐지 압력에 대항하는 전국 유일의 대학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뎌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6일, <부대신문>은 속보를 통해 총학생회 최혜미 부회장의 제적 사실을 알렸다. 학사경고 누적으로 제적된 그녀는 자연스럽게 학생회원 자격을 잃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자격을 상실한 최혜미 씨가 중앙운영위원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총학 회칙에 위반된다. ‘학생회칙을 잘 몰라서’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2013년 당시 총학 부회장이 휴학으로 학생회원 자격을 상실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이예진 전 부회장이 현재 총학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사실 총학생회가 민주주의의 기본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총학의 과오를 차치하더라도, 현 총학이 남긴 오점이 있다. 작년 11월, 당시 예비 출마자였던 최혜미 씨는 동아리연합회 회장 자격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출석했다. 선거 후보자가 선거 규칙을 심의하는 회의에 참여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총학이 단순히 회칙 한 줄을 위반했다는 점이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의 절차를 반복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것으로 확장된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민주주의 가치의 수호’와 ‘학원의 자주화’를 외치는 그들이 말이다.
  총학의 대처는 황당할 따름이다. 속보가 나간 당일 저녁, 최혜미 씨는 ‘학우 여러분들에게 직접 말씀드리지 못하고 <부대신문>의 보도를 통해 알게 해서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제적 사실을 인지하고도 총학 중앙운영위원회에 참석한 것에 대한 사과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을 만나 자신의 제적 사실을 전했으며, 개강 당일 대자보를 통해 전체 학생들에게 알리려 했다는 변명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최혜미 씨가 가장 먼저 자신의 제적 사실을 알릴 대상은 단대 회장들이 아니라 학생들이어야 했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선출된 대표자가 지켜야 할 기본적 절차다.
  그러나 이 사건은 무뎌진 학생 사회에서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학생들은 단지 총학을 향해 냉소를 보낼 뿐이었다. 우리 세상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분노와 불신을 넘은 냉소의 사회.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학생들 역시 시류에 무기력하게 휩쓸렸다. 누구나 민주주의의 훼손을 목격하지만 모두가 침묵한다. 우리 세상은 그렇게 무뎌졌다. 그리고 ‘무뎌진다’는 것은 결국 우리 세상을 바로잡는 기능이 망가졌다는 것과 결이 다르지 않았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최근 한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사다. 어쩌면 故 고현철 교수는 무뎌진 세상 속에서 누군가가 여전히 싸우고 있음을 알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싸워야 한다고, 이대로 침묵할 수 없다고. 故 고현철 교수는 무뎌진 우리를 깨우는 경종이 되었다. 이제 남아있는 우리가 그의 부름에 응답할 때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대학마저 이대로 무뎌질 수는 없다. 무뎌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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