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은 신비로움이며, 이것이 진정한 예술과 과학을 낳는 원천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그에게 과학과 예술이란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나무다. 헌데 ‘보통’ 사람들에게 과학과 예술의 닮은 점을 꼽아보라면 어떨까? 두 가지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가 고작 아닐지. 예술의 경우 난해함 자체가 하나의 의미라고 위안 삼을 수 있겠지만 과학은 해당 사항이 없다.
  과학에 대해선 무지함과 짝을 이룬 모종의 확신마저 견고하다. 과학은 전문가, 아니 적어도 전공한 이들만 알 수 있는 수준 높은 세계라는 생각. 또 정치나 경제 등 세속과는 무관하게, 순수하며 가치중립적이고 명명백백하게 옳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거기에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같은 천재 과학자의 아우라는 일반인이 과학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며, 굳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에 힘을 싣는다.
  그런데 최근 보통 사람들이 과학이란 세계의 닫힌 문을 두드리는 여러 시도들이 눈에 띈다. 올해 6월 출간된 고려대 BK21PLUS 정보기술사업단 이종필 연구교수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는 2009년 1년 간 저자와 일군의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 풀기에 도전 과정을 풀어쓴 책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학도 물리학도 공부해 본 적 없는 직장인과 주부 등 그야말로 일반인의 도전이었고, 시도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카이스트 정재승(뇌인지공학) 교수와 아마추어 과학자 54명이 2012년 진행한 <백인천 프로젝트> 역시 주목할 사례다. 지난 30년 간 한국프로야구 데이터를 모두 분석해 ‘4할 타자가 왜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답해 보려한 연구로, 영문으로 된 공식 과학논문으로 마무리했다. 이른바 ‘집단 지성’의 참여로 완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연구다. 
  과학은 또 어른들의 여가와 오락을 위한 장이 되기도 한다. 원종우 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 있네>는 과학이 토크쇼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옆집 할머니도 알아듣는 과학’이란 모토에 걸맞은 재미로 무장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작년에 연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는 성과 사랑이란 주제를 다루며 ‘19금 과학 강연’이란 홍보로 시선을 끌었다. 학창 시절의 수학과 물리 점수를 떠올리며 주눅 든 상태가 아니라 라디오 듣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듯 과학을 만나는 새로운 경험들이다. 
  책은 어떤가. 공부도 아닌데 누가 과학 책을 읽을까 싶지만,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에서도 과학 분야는 선전하고 있다. 그 뒤엔 ‘과학 책’을 읽는 모임들이 있다. 원조 격은 2002년 대전에서 한남대 교수의 주창으로 시작된 ‘백북스’다. 이 모임은 대개의 독서모임과 달리 과학 대 인문 도서의 비율을 7:3으로 유지해 왔다. 300회를 넘겼으며, 서울, 인천, 대구 등 각지에 모임이 생겼고 인터넷 회원은 7천 명이 넘는다. 페이스북의 과학책 읽는 모임인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은 과학이란 주제를 다루는 비공개 그룹임에도 3,800 명이 넘는 이가 참여한다. 과학 책 ‘사재기’하는 모임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읽고, 나눈다. 

  그럼에도 많은 이에게 여전히 과학은 멀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을 교양의 영역에서 다시 만나야만 할 이유가 있다. 과학은 인류의 생활을, 심지어 지구 자체도 바꿔 놓을 정도로 급격하게 발전했지만 사람들은 과학을 점점 더 멀게 느낀다. 과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전공과 연구 분야를 넘어선 성찰은 기대하기 어렵다. 인류 앞에는 기후 변화나 맞춤형 아기 등 한 분야의 이론과 기술만으로는 풀 수 없고, 도덕과 차원 높은 성찰을 요구하는 여러 문제들이 던져져 있다. 역사가 클리퍼드 코너는 <과학의 민중사>를 통해 인류의 과학은 오로지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처럼 빛나는 별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광부, 어부, 농부 등 무수한 생활인들의 ‘집단 지성’을 통해 이뤘다고 말한다. 오늘의 과학을 만들어 온 이도 내일의 과학을 결정할 이도 우리 모두다. 과학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지금 과학을 읽고 생각해야 할 당연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소영 과학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