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고, 여기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이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생각은 희미해지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내가 주인공이다’라는 생각이 뿌리 잡고 있다. 그런 생각이 위협을 받을 때마다 화를 내거나, 외면하는 등 반발을 하며 사람들은 그 생각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정말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가 맞을까?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 세상은 모두 같이 살아가는 거예요’와 같은 흔한 말이 아니다. 가정을 하나 해보자. 내가 살고 있는 지구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졌고 나는 여기서 그 주인공을 위한 조연이다. 물론 주인공이 누구인가는 알 수 없다. 부모님일 수도 있고, 정말 친한 친구, 연인 또는 존재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난 주인공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인가? 그 사람의 세상을 그저 구성하기 위하여? 그냥 없으면 심심하니까 엑스트라로 넣어준 것인가? 내가 왜 여기를 살아가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A라는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난 그의 친구라고 하자. 친구라는 역할로 내가 선택된 이유가 뭘까. 친구라는 역할을 나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70억 명이나 있는데 내가 지금 이 세상에서 이런 역할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역할을 맡았다면 A의 세상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고 다른 줄거리였을까? 난 달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주인공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줬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그러한 역할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세상은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똑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아니지만 이 세상의 ‘나’ 또한 중요한 역할이다. 궁극적인 흐름의 선택은 하지 못하더라도 선택지들 중 적어도 하나는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위에 내가 쓴 말도 안 되는 가정은 실제로 내가 평소에 자주 하는 생각이다. 또한 내가 일정 부분 믿고 있기도 한 생각이다. 난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고 다른 누군가의 세상을 전개해 나가고 마무리 시켜줄 수 있는 조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일 때보다 더욱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주인공은 분명 나로 인해 삶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주인공 이야기의 결말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특히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히 행동해야 한다. 주인공이 나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도록 금전적, 지식적, 사회 지위적 능력을 갖출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돕는 역할을 자신의 의미로 여긴다는 것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서로 주인공이 되려고만 경쟁하는 현대 사회에서 조연을 자처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가 아니라면 ‘나’가 주인공인 다른 세상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의미이다.
김우준(의예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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