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임금과 순임금이 중국을 다스리던 시기는 이상적인 정치가 베풀어진 때라고 한다. 백성들이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살았던 이 시기를 ‘요순시대’라고 하는데, 오늘날에도 태평성대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종종 쓰인다. 요순시대의 일화 중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고복격양의 이야기다. 백성들이 잘 살고 있는지 살펴보던 요임금이 “배부르고 등 따신데 임금이 무슨 소용이랴”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백발노인을 보고 흐뭇해했다는 내용이다. 나라가 평화로워 백성들이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가 돼야 진정한 태평성대라는 것이다.

  올해 총학생회가 지향하는 바는 요순시대인 듯하다.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총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매번 비슷했다. 설문지 문항을 본 학생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응답하는 시간은 길어봤자 15초를 넘기지 못했다. 그들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펜을 찍어 내렸다. ‘둘 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음에도 직접 마주한 무관심은 생생하게 다가왔다. 
  요순시대를 위한 조건 하나는 충족됐다. 문제는 ‘등이 따시고 배가 부른가’다. 총학생회 공약 중간점검의 결과는 기자들을 머쓱하게 했다. 죄다 논의 중이고 마련 중이다. 가시적인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은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관심이 적은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게 미덕이라지만 이제는 차라리 (한 일이 있다면) 생색이라도 내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몇 주 전, 대학면 기사를 위해 총학생회장을 취재했다. ‘학생자치기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을 던졌다. 총학생회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학생사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편이다”. ‘무관심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준비하고 있던 필자의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그가 말하는 ‘우리학교 학생들’은 설문조사를 하는 동안만 어디론가 숨어버렸나 보다. 학생들의 무관심을 뼈저리게 느끼며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현실을 도피하는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낮은 투표율과 낮은 찬성률로 시작해 안주할 것도 없는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인가.
  자칫 장난스러워 보일 수 있는 설문이다. 그러나 질문이 가볍다고 해서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다. 혹자는 학생들이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총학생회가 최선을 다해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소통하는데도 여전히 학생들이 무관심하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 학기가 지나도록 총학생회장의 이름 하나 모르는 학생이 70%가 넘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분명해진 것은 학생들이 소통과 홍보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심의 불씨는 미미하지만 아직 꺼지지 않았다.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살려낸 불씨는 언젠간 타오를 것이다. 아직 시간은 많다.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대표기구로서, 남은 임기에 대해 조금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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