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정학이 요동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필요와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실현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만화가 있다. 그런데 북한을 고민할 때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뼈만 남아 걷지 못하는 노인이 신밧드에게 목마를 태워달라 하는데, 목마를 탄 순간 노인은 괴물로 돌변한다. 신밧드의 목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먹고 놀고 자기까지 하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이런 괴물 같은 존재다.
  괴물은 상식과 예의를 모르고 판단과 행동이 예측 불능하다. 예측가능한 건 괴물이 목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뿐이다. 목마를 탄 쪽과 태운 쪽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서로 싸워도 목마 태운 쪽이 불리하고, 밑에서 아무리 짜증나더라도 목마 탄 쪽은 상관없이 편할 수 있다. 북한은 남한에게 이런 존재다. 결국 괴물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은 짜증내지 않고 괴물과 물리적 충돌을 하지 않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괴물을 나와 유사한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지닌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괴물이 자진해서 내려올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서 몇 가지 상황인식과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북핵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에게 핵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북한은 북·중·러 동맹이 한·미·일 동맹에 대적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을 잘 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세력균형을 다시 회복한 방안이 공포의 균형이라 불리는 핵균형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을 쥐고 남한의 목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의도한 것을 확실히 얻을 때까지 남한을 머리 위에서 계속 누르는 위협으로 상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괴물을 목에 태운 입장에서 남한이 핵무장하거나 물리적 충돌이나 전쟁으로 대응하는 것은 자멸에 가깝다. 결국 길게 보고 인내하며 미래지향적인 경로를 걸어 북한을 남한과 동질적인 국가로 만드는 노력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인 것이다.
  둘째, 북한 봉쇄와 붕괴 시나리오는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고 위험하다. 북한을 봉쇄하고 붕괴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은 만성화된 경제위기 속에서 그럭저럭 사는 데 익숙해 있으며, 한·미·일에 의해 봉쇄된 북한이 붕괴되고 그 결과 한·미·일이 자국의 국경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중·러가 용인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북한에서 정권붕괴나 체제이행 같은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주변 4강이 다시 한반도에 개입할 것이라는 점은 역사가 입증한다.
  셋째,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미래지향적 목표이다. 유럽통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2차 대전 이후 반전과 평화에 대한 지역국가 공동의 염원, 전후 상실한 과거 유럽중심주의와 패권주의를 복원하고자 하는 의도,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제국에 군사적으로 공동대응하는 목적이 있었다. 이 세 가지가 지난 70년 동안 유럽통합을 끊임없이 추진해온 원동력인 것이다. 남북관계에도 이런 목표가 필요한데, 그것은 남북이 합의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통일이며 통일한국을 번영으로 이끄는 통일이다. 반민주적이고 반자주적이며 상호파괴로 가는 통일은 안 된다는 것이다.
  넷째, 시간, 경비, 노력을 줄여주는 GPS 같은 경로설정이 필요하다. 유럽통합은 자유무역협정-관세동맹-단일시장-화폐통합 단계를 거쳐 왔으며 재정위기 이후 조세통합도 추진 중이다. 물론 재정위기 이후 다양성을 경시하는 ‘하나의 유럽’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유로존 탈퇴 위협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유럽은 경제통합뿐 아니라 외교안보와 내무치안 영역에서도 통합노력을 지속해왔다. 반면 남북은 인적교류는 물론이고 이메일조차 오가기 어렵다. 이산가족에게는 가혹하게 비인도적인 환경인데, 남북은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방안을 놓고 경쟁 중이다. 그런데 유럽통합이 지나온 길 중 단일시장은 재화, 서비스, 자본,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단계다. 남북이 유럽이 걸어온 길을 걸어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통합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실질적 통일에 가깝다. 법적이고 영토적 통일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통일에 가까운 남북통합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로드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은 우리에게 빅뱅과 같다. 분단이 경로결정성을 가지고 역사적이고 제도적으로 남한의 과거와 현재를 규정해왔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분단이 가져온 대결, 충돌, 반공, 전쟁가능성을 충실히 따라오는 데 약 70여년이 소모되었다. 동북아 지정학의 단층활동이 G2시기 한반도에서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분단과 안보딜레마와 전쟁과 공멸의 길을, 불가침과 군축과 평화와 번영의 길로 대체할 시기가 된 것이다. 분단과 지정학적 단층이 주변 4강이 포진한 한반도 지정학의 필연이 아니듯, 강대국의 각축장이 한반도 역사의 운명도 아니다. 이런 수동적인 운명론을 대체할 남북통합이 있는 것이다.

   
 진시원 일반사회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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