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회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중국산 땅콩도 아니고 수분이 다 빠진 캘리포니아산 호두도 아닌, 봉지째 준 마카다미아라는데 그녀는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행기를 돌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일까. 덕분에 일시적이나마 마카다미아 판매량이 늘었다고 하니, 그녀가 견과류 업체의 협찬을 받고 간접광고를 해준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해 보았다.
  땅콩회항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그동안 익숙하게 자행되어 온, 회장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층의 ‘갑질’에 대한 것이다. 곪을 대로 곪은 주머니가 펑, 하고 터지면서 사방에 누런 고름이 이끼처럼 덕지덕지 붙은 것이다.
  여기, 대한항공도 견과류 회사도 아닌, ‘풀빵’을 가업으로 이어받겠다는 남자가 있다. 아버지에 이어 자신도 길거리 음식인 풀빵 사업에 청춘을 내던진 남자는 취업이 안 돼서, 학벌이 안 좋아서,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않아서 풀빵을 파는 게 아니라고 한다. 순전히 자발적인 의지로, 자신의 뜻에 따라 ‘즐거운’ 마음으로 풀빵을 굽고 있다고 강변한다.
  가업을 이어받았으니 대기업 총수 자녀만큼은 아니더라도 붕어빵 기계 하나쯤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아들은 ‘붕어빵’이 아니라 일본에서 건너온, 아버지 표현에 따르면 왜색이 짙은 ‘타코야끼’를 판다. 같은 어미(붕어빵)를 두고 아버지와 경쟁하지 않으려는 아들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면 좋을 텐데 아버지는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아들은 가업을 잇는다고 하면서 왜 다른 일을 하는 것일까. 일일드라마의 공식 같은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그래서 친아버지 대신에 일본인인 타꼬야끼 명인을 아버지로 모시는 걸까.
  오사카에서 극적으로 만난 타꼬야끼의 명인, 도제식 수업, 노점상들이 겪어야 하는 일각의 문제들, 그 사이에서 핀 제자 현지와의 사랑. 그리고 출생의 비밀까지. 김학찬의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창비)가 그려내는 모티프들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길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붕어빵처럼 여기저기서 익히 보아온 요소들을 잘 갖다 버무렸다. 그리 자극적이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은, 그렇다고 음식을 뱉고 싶을 만큼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글의 소재와 어울리는 경쾌한 문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전화통화 장면은 이 작가의 강점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 쨉과 훅을 서로에게 날리지만, 어느 누구도 K.O패 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서사의 핵심요소들은 얼마든지 극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피가 난무하고 욕설이 오가며 눈물과 콧물이 엉망으로 섞여 나오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갓 구워낸 붕어빵처럼 따끈하면서도 맛있게­­­ 이야기를 버무려 냈다. 밀가루의 반죽은 적절하며, 앙꼬는 싱겁지도 쓰지도 않다. 붕어빵의 달인이 구운 것이라고 하기에는 망설여지지만, 신참내기가 구운 어설픈 맛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독자들을 버겁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끈하게 잘 빠진 붕어빵에, 타꼬야끼에 마음이 뺏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뚝심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예쁘지만, 주인공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는 않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붕어빵이, 타꼬야끼가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독자를 사로잡는 의뭉스러움이 작가에게 아직은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땅콩회항 정도의 쇼킹함은 있어야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우리들의 무뎌진 감각 때문일까. 길거리 간식 풀빵에게 식사가 되어 달라는 것이 무리인 줄 알면서도 아직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오선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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