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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읽어주는 남자] 황금 색채의 거장 클림트
  • 한국미술협회 백경원 이사
  • 승인 2015.06.01 05:49
  • 호수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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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딧(Judith)>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901년작/캔버스에 유채/84x42cm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클림트’는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 양식을 선호했다. 그는 비엔나 국립미술학교를 거쳐 당시 전통적 미술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빈 분리파’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금은세공 장식가로 체코 보헤미아 출신인 아버지와 젊은 시절 오페라 가수로 활동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환경적인 요인으로도 그의 평소 작품활동이나 성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아르누보 계열의 핵심인물로 지목되면서 신조형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한 작품성향을 구사하면서 주로 성(性)과 사랑,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1900년대 초반, 그는 상징주의 화가 겸 디자이너로서 에로틱한 여인들을 묘사하여 당시 오스트리아 미술계를 지배할 정도의 인물이 된다. 젊은 시절에는 빈의 도시공공건물에 많은 그림을 그렸고 시립극장의 관객석을 매우 정교하게 묘사하여 황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후 더욱 실험적인 경향을 띠게 되는데, 반복과 모방을 거부하고 자연의 생명체 속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예술철학을 견지한다. 또한 다양한 배색 효과를 통하여 여성적 색채의 자연효과와 인공물성을 사용한 결과 매우 신화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감돌게 하는 기법을 채택한다. 당시에는 이러한 경향이 매우 혁신적 실험이었다. 또한 일본, 중국을 비롯한 고대 이집트 미케네 미술에 영향을 받으면서, 1900년경에 이르러 본인과 뜻을 같이한 화가들과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탈퇴하여 오스트리아 미술조합을 설립해 결국 ‘빈 분리파’로 독립된다. 이후 그는 분리파의 회장으로서 기존의 보수적이고 페쇄적인 아카데미에서 벗어나 ‘빈’식의 아르누보 운동을 전개한다.
  클림트는 시대를 크게 앞질러간 선구자로, 일찍이 퓨전과 혼합 등에 가장 걸맞는 작품으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온 거장이다. 그는 이미 110여 년 전에 과거와 당대의 미술을 합쳤고, 동·서 간의 경계 요소뿐만 아니라 미술장르 안에서도 모자이크, 판화는 물론 문학과 음악적인 요소를 동원하여 미래에 열광하게 될 새로운 지평을 창조했다. 아마도 전 세계인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고 감정을 사로잡는 그림이 클림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는 평범한 그림을 거부 했다,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부와 명예를 멀리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900년대 초기부터 황금기를 맞이한다. 인상파 계열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찬란한 빛이나 그림자가 없는 대신,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한 금색을 주로 사용해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표현을 구사한 시기다. 이러한 그의 비잔틴식 모자이크는 화가가 당시 여성의 우월시대의 도래를 직감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도 ‘유딧’이 머리를 보이며 도발적으로 관람자를 응시하는데, 그녀는 감각적인 힘과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 아시리아 장군이었던 ‘홀로페르네스’가 베틀리아 지방을 포위했을 때 아름다운 과부 유딧이 마을을 구하고자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그가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할 때 머리를 베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그와 관련된 역사 속 이야기들을 차용해 상징주의적이고 반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띤 화풍은 현재의 디자인 영역에서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백경원 이사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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