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걱정, 보살핌, 의존, 즐거움, 외로움 등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다. 사랑에 동반된 감정은 즐거운 쾌락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고, 복수심에 불타는 분노일 수도 있는데, 사랑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달라 어떤 사람은 열정과 동일시하고, 어떤 사람은 신뢰를 중요시한다. 한편 연인들은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에 대한 의문을 갖고, 사랑에 대한 정의도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이렇게 정의하기가 어려운 개념인 사랑을 지배하는 신경계를 연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마치 흘러가는 구름을 잡으려고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연구된 바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연인들에게 사랑이란

대표적인 사랑은 남녀 간의 로맨틱 사랑(romantic love)이다. 사랑(love)이라는 개념이 남녀 개인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동반자적 사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부터이고,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 이후이다. 처음 우리나라에 서양의 ‘love’개념이 소개될 때는 ‘love’를 연애(戀愛)라고 번역한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전통적인 한자에서 남녀 사이의 열정을 뜻했던 연(戀)과 당시 서양풍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애(愛)를 합해서 만든 말이었기 때문에 연애라는 말은 ‘love’ 중에서 남녀 사이의 사랑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남녀가 좋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복합적인 관계를 세분하면 연애, 섹스, 애착(attachment)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랑의 신경계는 이 세 차원에서 연구되어 왔다. 남녀가 사랑하면 대부분 섹스를 하게 되지만 사랑이나 섹스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고 대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애착이라고 한다. 애착이란 타인과 깊게 결합되어 같이 생활하는 것에서 느끼는 행복으로 연애나 섹스와는 차원이 다르며 우리말에서는 정이라는 개념과 비슷하다. 이 글에서는 연애와 애착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하는데, 포유류와 인간에 대한 연구를 포괄할 것이다.

동물은 어떻게 사랑할까

동물의 연애는 탐색과 구애 과정으로 이뤄지는데, 탐색은 이성을 찾아 나서는 행동이며, 구애(courtship)는 이성을 교미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혹 행동이다. 여기서 성공하면 교미 즉 섹스가 이루어진다. 특정 배우자를 선호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에너지를 집중하는 현상은 성 선택의 개념으로 연구되었다. 공작의 꼬리 깃털과 같이 생존에는 도움이 전혀 되지 않지만, 이성이 좋아하는 외모가 진화한 것도 이러한 성 선택의 압력 때문인데,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보여주는 쪽이 있으면 이를 보고 선택하는 쪽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우림지역에는 일부일처제 생활을 하는 마모셋(marmoset) 원숭이들이 사는데, 암컷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의 특정 부위에 병이 생기면 수컷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지만 수컷이 접근해오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한다. 이는 마모셋 원숭이의 구애 활동이 교미와는 다른 체계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모셋 원숭이 암컷과 수컷이 자신들의 새끼를 보살피고 있다. 이와 같은 애착 행동은 자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일부일처제는 쥐들에게서도 나타나는데, 미국 중서부에 사는 초원들쥐(prairie vole)가 대표적이다. 초원들쥐 암컷은 한 수컷과 일단 짝짓기를 하면 그 수컷하고만 교미를 한다. 특정 이성만을 계속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은 뇌의 도파민 작용이다. 도파민 차단제를 뇌에 주입하면 이전의 관계는 깨지는데, 다시 도파민을 주입하면 주입 당시 옆에 있던 수컷을 좋아하게 된다. 포유류의 구애행동이 중추신경계 도파민의 작용이라는 증거는 영장류에서도 밝혀졌는데, 수컷이 특정 암컷을 좋아하는 현상은 좋아하는 특정 개체에 대한 감각이 뇌의 도파민 방출을 자극하여 짝을 고를 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중추신경의 도파민은 어떤 짝을 좋아할지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포유류에 속하는 수컷 회색늑대가 교미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뇌의 도파민 작용 때문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람이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는 포유류의 구애 행동에서 보이는 많은 특징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의 연애는 짝을 고르는 포유류의 신경체계의 발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뇌 체계는 포유류의 일반적인 뇌 체계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지만 다른 포유류에서 발견되는 구애 행동과 인간의 구애 행동은 다른 면도 있다. 대부분 포유류의 구애 기간은 짧아서 몇 분에서 며칠 길어도 몇 주에 끝나지만, 인간에게서의 구애 행동 즉 연애 특히 강렬한 단계는 12~18개월 동안 지속된다.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특정한 짝을 좋아한다는 점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짝을 얻으려는 목표를 향해 에너지를 집중하고, 그것을 강박적으로 추구한다. 즉 사랑은 특정인을 특별하게 생각하면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며 상대의 허물을 과소평가하고 좋은 점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핑크 렌즈(pink lens) 효과라고 하는데,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가 생겼을 때 사랑의 열정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연애에는 도파민뿐만 아니라 노르에피네프린도 관여한다. 노르에피네프린이 활성화되면 각성, 에너지 상승, 식욕감소, 주의집중, 기억력 상승 등과 같은 효과를 보인다. 애인과 같이 있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땀이 나며 손발이 떨리는데, 이것이 노르에피네프린의 작용이다. 또 노르에피네프린이 집중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애인과 나누었던 대화 하나하나가 뚜렷이 기억되고 몸짓이나 냄새까지도 오랫동안 기억된다.
연애할 때 남녀의 뇌가 흥분되는 부위는 공통되지만 다소 차이가 있어서, 남성은 시각 자극과 관련된 부분이 활성화가 많이 되고, 여성은 주의, 기억, 감정과 관련된 부분이 더 많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연인들의 10%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데, 남성의 반응이 좀 더 즉각적이어서 남성이 더 빨리 사랑에 빠진다.
뇌에서 흥분되는 부위가 있으면 떨어지는 곳도 있게 마련이다. 사랑할 때 기능이 떨어지는 부위는 전두엽(이마엽)과 편도인데,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편도 기능이 떨어지면 공포를 덜 느끼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는 무모해 보이는 위험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포유류와 조류의 강한 모성애

연애가 아니면서 그 이상 강력한 사랑은 모성애인데, 모성애를 느낄 때도 연애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연애할 때와 마찬가지로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어 자식들의 허물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다만 모성애 때는 성 충동과 관련된 시상하부가 활성화되지는 않을 뿐이다.
파충류는 알을 안전한 곳에 낳는 것으로 부모의 의무가 끝나고, 새끼들을 돌보지는 않지만 조류 중에는 포유류처럼 자기 새끼들을 잘 돌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부모가 새끼를 보살피는 경향은 포유류와 조류가 공통조상에서 갈라지기 전에 진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포유류에 속한 많은 동물들이 암컷과 수컷이 서로 협력해서 둥지를 만들며 서로 먹여주고 쓰다듬어주며 같이 붙어지는 시간이 많다. 서로 떨어지면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애착 행동은 자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진화됐을 것이다.

바람기를 부르는 호르몬이 따로 있다?

수컷 초원들쥐는 암컷을 보면 아주 적극적으로 암컷의 등에 올라타서 몇 시간 후에야 내려오는데, 이 암컷과 교미에 성공하면 그 암컷과 평생 같이 살고 새끼도 같이 키운다. 이들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것은 수컷에서는 바소프레신(vasopressin), 암컷에서는 옥시토신(oxytocin) 때문인데,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모두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바소프레신은 자기 영역을 표시하고 공격적인 행동과 같은 수컷 특유의 행동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고, 옥시토신은 암컷이 새끼를 분만할 때 많이 분비되어 태아와 태반이 빠져나온 다음 자궁이 수축하도록 하여 출혈을 방지하고 새끼에게 먹일 젖이 많이 나오도록 한다. 난교성향을 보이는 들쥐들의 뇌에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작용하는 수용체가 거의 없는데,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들쥐와의 차이는 바소프레신수용체 유전자(avpr1a)를 조절하는 염기서열 차이 때문이다. 이 유전자의 염기서열 중 반복되는 부위가 있는데, 이 부위가 길수록 파트너와의 유대감이 강해진다. 이 유전자를 난교성향의 수컷 들쥐의 뇌에 이식하면 특정 암컷하고만 짝짓기를 하게 된다. 주위에 다른 암컷들이 많이 있어도 하나의 암컷하고만 지내게 되는 것인데, 난교 습성이 유전자 이식으로 한순간에 바뀌어버리는 마술이 일어나는 셈이다. 한편 일부일처제의 수컷 초원들쥐의 뇌에 바소프레신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입하면 파트너를 결정하지 못한다. 즉 여러 암컷 중 하나를 골라 달려들어야 하는데, 이 암컷 저 암컷 기웃거리기만 하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게 된다. 암컷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암컷의 뇌에 옥시토신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을 투입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파트너를 선택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암컷의 뇌에 옥시토신을 다시 주입하면, 당시에 같이 있는 수컷을 좋아하게 된다.
인간을 비롯한 유인원에서도 초원들쥐에서 발견되는 바소프레신수용체 유전자 조절부위에 단순염기 반복서열이 존재한다. 사회활동과 성적인 유대감이 풍부한 인간과 보노보의 염기서열은 비슷한 반면 사회성이 낮은 침팬지에서는 결손을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염기서열은 조금씩 달라서 이 염기서열이 길면 평생 한 배우자하고만 살고 짧으면 바람기가 많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는 있지만 아직 잘 모른다. 자폐증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는 있지만 배우자에 대한 애착 정도와의 관련성은 아직 불확실하다.

   
최현석
과학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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