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조심> 로알드 달 저/2007/강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마틸다>. 우리에겐 영화로 더 익숙한 작품들이지만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은 따로 있다. 바로 작가 ‘로알드 달’의 소설이다. 로알드 달은 번뜩이는 반전과 블랙 유머를 통해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면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떠올리고 <개 조심>을 읽는다면 당혹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세상에 처음으로 내밀었던 이 글은 환상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개 조심>은 ‘진짜’ 이야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로알드 달의 생생한 경험이다. 총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를 아주 기괴한 방법으로, 그러나 아주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작가의 독특한 서사 구조와 서술 방식 때문에 전쟁의 극악무도함이 더욱 강조된다. 곳곳에 숨어있는 반전은 전쟁의 잔혹함을,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블랙 유머는 섬뜩함까지 느끼게 한다.

  로알드 달의 전쟁 이야기를 읽으면서 필자는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6.25전쟁을 경험하셨던 할아버지는 필자에게 종종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할아버지가 열다섯 살 일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마을의 조그만 병원에서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밀려 들어왔어. 그게 북한군인지 국군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무서워서 병원 침대 밑에 숨었지. 그때는 군인들이 지나간 자리가 다 폐허가 됐으니까. 침대 밑에서 보니까 군화가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보이더라고. 심장이 아주 크게 뛰는데 그 소리가 군인들한테 들릴까 봐 너무 무서웠어”
  하지만 필자가 할아버지가 겪었던 그 공포의 기억에 100%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세대는 6·25전쟁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한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이지만, 적어도 필자가 ‘직접’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그저 전쟁은 책 속의, 영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전쟁은 그런 우리 바로 옆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시리아, 말리 등 전 세계 곳곳에는 내전과 테러가 실재한다. 필자가 책을 통해 전쟁을 보는 동안, 누군가는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현장이,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텔레비전 속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일 뿐이다. 전쟁은 이렇듯 모순적이고 잔혹하다.
  하지만 로알드 달은 책 그 어디에서도 ‘전쟁은 잔혹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전쟁터의 모습을 묘사하거나, 긴박감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신과 그의 동료, 그리고 가족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보고, 듣고, 느꼈던 바로 그 ‘전쟁’. 저자의 표현대로 ‘기껏해야 담뱃불 붙일 정도’의 시간에도 생과 사의 갈림길은 전쟁터를 관통하고 있다.
  “난 죽고 싶지 않다. (중략) 지금처럼 조이와 함께 잠자는 것. 가끔 고향에 돌아가는 것. 숲 속을 거니는 것. 술병을 따르는 것. 주말을 기다리고, 오십 년간 매해 매일 매시간을 살아있는 것. 만약 지금 죽는다면 이 모든 것을 놓치게 될 것이며 수많은 다른 것들도 놓치게 될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도” 저자는 죽음의 고비에 서 있는 전투기 조종사를 이렇게 그려냈다.
  <개 조심>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 소설 중, 필자가 최고로 꼽고 싶은 단편은 ‘당신 같은 사람’이다. 이야기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참전했던 전투기 조종사 두 명이 나누는 대화가 전부다. 하지만 그 대화가 전하는 울림은 가히 파괴적이다.
  “방향타 페달을 발끝으로 살짝, 느끼지도 못할 만큼 아주 살짝 누르기만 하면 된단 말이네. 그러면 다른 집에, 다른 사람들한테 폭탄이 떨어지겠지. 모두 나한테, 전적으로 나한테 달린 일이고, 매번 출격할 때마다 난 누구를 죽일지 결정해야 해. 방향타 페달을 발끝으로 살짝 눌러서 말이지. (중략) 그저 그렇게만 해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한 무더기 죽이지” -‘당신 같은 사람’, <개 조심> 중
  누군가에게는 그저 페달을 밟는 행위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될 수 있다는 것. 폭격을 당한 사람들에게 ‘가해자’로 불리는 그들 역시 전쟁의 상흔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 로알드 달은 ‘전쟁이 잔혹하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전쟁은 이렇듯 모순적이고 잔혹한것이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전쟁과 소년>
윤정모 글, 김종도 그림/
2003/푸른나무

윤정모 작가가 직접 겪었던 6·25전쟁을 동화로 표현해냈다. 소년의 눈을 통해 남과 북, 아군과 적군의 차원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 그리고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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