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노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답답함’, ‘공경’, ‘따뜻함’ 등의 단어가 머리를 스쳐 지나갈 것이다. 여기 평범하면서도 친숙한 두 노인이 있다. 한 노인은 1800년대 오스트리아 작가인 아달베르트 슈티프터가 쓴 <외로운 노인>에 등장한다. 다른 노인은 2007년에 지어진 박완서 작가의 <황혼>에 나온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 지어진 작품이지만 두 책에서 나타나는 노인의 모습은 다른 듯 닮아있다.
 

그는 사실 외로웠던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홀로 외딴 섬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있다. 그는 바로 주인공 빅토르의 백부이다. 백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어 양어머니 밑에서 자란 빅토르에게 사회에 나가기 전 자신이 머무는 곳으로 오라는 소식을 전한다. 그렇게 쓸쓸한 백부를 닮아 황량하기만한 섬에 빅토르가 들어가게 된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도착한 그곳에서 빅토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병적으로 겁이 많고 개인주의적인 한 노인, 백부였다. 그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누가 목을 베어 갈까봐 면도도 직접 하고 물어뜯길까 걱정되어 밤에는 개도 가둬 놓을 정도다. 빅토르는 이러한 백부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이후 빅토르는 외딴 섬에 갇혀있는 답답함과 왜 불렀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는 무심함에 탈출을 결심한다. 하지만 애초 약속한 날짜까지 머물겠다고 말한 탓에 그는 꼼짝없는 포로생활을 지속하게 된다. 그렇게 ‘나가겠다’고 선전포고한 이후 백부와 빅토르의 관계는 어색해진다. 백부는 빅토르를 부르지 않고 빅토르도 백부 쪽으로 가지 않는다.

   
<외로운 노인>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저/2003/열림원
  “다른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같은 혈육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 사이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멀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후손은 그토록 달랐다” -<외로운 노인> 중
  이 같은 이야기로 책의 중반쯤 왔을 때 독자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백부가 빅토르를 불렀단 말인가. 그리고 그 답은 책이 몇 장 남지 않았을 때, 장장 네 페이지에 걸쳐 등장한다. 그리고 한 마디로 함축된다. ‘오랫동안 너를 가까이 지켜보고 싶었을 뿐’.
  뜬금없는 그의 솔직한 고백에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최근을 반추해 봤을 때, 우리는 빅토르처럼 노인의 행동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무작정 그들을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모진 풍파를 헤치고 살아온 그들을 대했던 우리의 모습은 어땠는가.‘빅토르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일생이 어스름해질 때

 

  “강변 아파트 칠 동 십팔 층 삼 호에는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와 젊은 여자의 남편과 두 아이가 살고 있었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는 고부간이었다. 고부간의 의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황혼> 중

   
<황혼>
박완서 저/2007/휴이넘
  이 책의 줄거리는 위에 적힌 몇 개의 문장,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소외당하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멋들어져 보이는 아파트, 수많은 방 중 제일 좁고 퀴퀴한 골방에 한 늙은 여자가 살고 있다. 며느리에게 ‘어머니’라고 한 번 불리지 못하는 그녀는 집에서 이미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다. 이곳 골방에는 가족들의 목소리 대신 세탁기 소리, 텔레비전 소리 등 온갖 생활 소음만이 공허한 공간을 채운다. 어느 날 늙은 여자는 명치가 아파 며느리에게 아픈 곳을 문질러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무심한 며느리는 명치를 문질러 달라는 것을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행위로 치부해버린다. 그렇게 아무 해결도 없이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늙은 여자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우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젊은 여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의 남편’이라는 단어로 지칭될 뿐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 가족의 이름을 대응시켜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은 곧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우리의 현실이자 이야기라는 것이다. 삭막하고 황폐한 우리네 모습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