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로 접어들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문학과 예술에서의 자기발전과 개혁적인 다양한 양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변화와 새로움은 매력적이다.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실험’ 또는 ‘실험적’이란 말은 요약하면, 전통에 대한 도전이다. 20세기 초 당시 전통적 미학은 1908년 이태리의 마리네티가 미래파를 선언하면서부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어 1910년 독일의 표현주의, 1915년부터 22년에 걸쳐 국제적으로 일어난 다다이즘, 그 맥을 그대로 잇는 1924년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프랑스의 문자주의 등 40여 개에 달하는 이즘에 의해 공격받게 된다. 이를 통칭하는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그들은 대개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고, 부자유스럽게 고착된 의식의 틀을 깨고자 했다.

  이처럼 실험정신은 전통으로부터 벗어남과 새로운 계속성이라는 이중적 영역을 통해 계속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즉 실험문학에서의 개혁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상대화되어 다양한 변용과 변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구체시 konkrete Poesie’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패러다임으로 독자에게 다가섰는지가 궁금하지 않는가?
 
 
실험문학으로서의 구체시
  조형예술에서 그 원류를 찾고 있는 독일의 실험시인 구체시는 전통적 시 형식과 내용에 반대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창조단위’를 만들고자 했다. 구체시인들은 창작의 대상으로 언어 그 자체를 선택한다. 언어의 표층현상을 파괴하고, 언어의 전통적인 전달성도 깨뜨리며, 우연한 통찰과 낯선 연관관계로 새로운 언어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19세기 자연주의 작가 홀츠가 언어를 재료로 간주한 것처럼, 문학에서 주제보다 방법을 중요시했다. 또한 실험문학의 모범을 형성하기 위해 언어를 문법이나 구문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 이의 연장선에서 단어나 음성에 그 절대성을 부여하여 재구성하는 새로운 언어예술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시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구체시(具體詩)에서 ‘구체’는 회화에서 ‘구상’과 같은 뜻이다. 구상(具象)이 구체적인 사물(事物)을 표현하듯이, 구상시(具象詩) 역시 청각적 시각적 수단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대상을 표현한다. 이처럼 구체 또는 구상이라는 용어는 원래 미술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비구상(非具象)의 반대개념이다. 회화에서 이 용어는 빌에 의해 강조됐고, 그의 제자였던 곰링어에 의해 시에 도입된다. 나아가 문학에서의 구체적이란 개념은 될에 의하면, ‘실험적, 기초적, 재료적, 추상적, 절대적, 기교적, 여백적, 명증적’ 등의 용어가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
 
   
사진1 - 필의 <사과>
 
   
사진2 -솔트의 <개나리>
 
 
구체시론에 따른 구체시의 유형들
  언어의 실체 가운데 하나는 감각적 차원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적 차원이다. 자이들러는 전자를 ‘언어체’로, 후자를 ‘언어내용’으로 나누었다. 상징적 비유적 시작법에서 일차적으로 중시되는 것은 ‘언어내용’이지, ‘언어체’가 아니다. 그러나 구체시 작법에서는 그 반대로 ‘언어체’가 중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전통적 인식이 전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언어는 의미적 측면과 감각적 측면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구체시는 언어의 감각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다시 음향적 측면과 시각적 측면으로 분류하여 ‘음성시, 청각시, 문자시, 시각시’ 등으로 형성된 것이다.
  대표적인 구체시인이자 이론가인 곰링어의 <시각적 시들에 대한 정의>(1972)에 따르면, 구체시의 유형은 ① 표의문자(ideogramm)② 배열(konstellation) ③ 방언시(dialektgedicht) ④ 회문(palindrome/anagramm) ⑤ 인쇄면 구성(typogramm) ⑥ 그림상징(piktogramm=bildsymbole) 등 6가지로 정의된다. 그 가운데 ‘그림상징’의 시를 들어보자, 아래는 현상의 형태가 의도적 모사적 윤곽을 지니는 단어나 활자의 배열로 된 시적 그림상징이다.
  될의 <사과>는 가장자리에 ‘벌레 Wurm’를 의도적으로 장치하였다.(사진1) 솔트의 <개나리>는 알파벳 ‘forsythia’에서 철자 하나하나가 가지마다 뻗어 나옴으로써 외향성(out)과 개나리과(race), 봄(spring), 색깔(yellow), 소식(telegramm), 고집(insist), 활기(action) 등으로 개나리꽃의 다양한 속성과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사진2)
  이러한 언어의 완전한 ‘재료화’나 ‘사물화’를 통해 ‘언어적 재료를 수단으로 하는 창작’이 구체시의 핵심적인 명제임을 알 수 있다. 몬은 이를 ‘언어적 세계의 이중화’라고 칭한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이 언어적으로 전달되는 까닭에 ‘언어조합법’에는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잠재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구체시는 독자의 적극적인 수용자세를 요구하며, 사회 참여적이다.
 
 
   
사진3 - 의도적으로 ‘빈자리’를 이용해 침묵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적인 구체시는 기본적으로 한 단어로 되어 있다”
  하이쎈뷔텔은 자신의 창작과정을 언어들의 ‘조합’으로 지칭하면서, 창작에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나아가 ‘구체시’에서 통사론적 통일의 해체를 요구하였다. 그는 몽타쥬를 ‘반문법적으로 말하는 것’의 과정으로 분류하고, ‘자유로운 통사론’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얀들은 언어기호의 자의성을 수정하여 표의문자화를 시도하였다. 즉 언어체와 언어정신을 한 시각에서 동시적으로 포착하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구체시를 ‘부호와 현실의 이데오그람화(表意化)’라고 정의한다. 의미세계가 와해되어 버린 후, 어떻게 무의미의 세계가 부호를 통하여 의미결핍을 극복하게 되는가의 과정을 드러난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때 ‘부호’란 표현세계를 이루는 수단, 즉 표현의 재료를 말하며, ‘현실’은 그것을 재료로 나타내려고 하는 대상, 즉 표현의 목적물 또는 내용을 말한다. 이를 그는 ‘공기현상(共起現象)’으로 지칭하였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곰링어의 구체시에서 ‘배열’은 시의 가장 간단한 형성가능성이다. 현대는 ‘신속한 의사소통’을 전제하고 있다. 구체시인들에 따르면, 새로운 시는 전체로서 또는 부분적으로 간단하고 한 눈에 알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시각적인 대상물과 일용품이 된다. 즉 이러한 시적 표현은 ‘사고의 대상’이자, ‘사고유희’이다.(사진3)
  이는 한 단어로 된 ‘한 단어 배열시 ein-wort-konstellation’이다. 이때 ‘침묵’은 동일한 단어의 활자배열과 텍스트의 중앙이나 가장자리, 첫 부분 또는 끝 부분 등의 의도적인 ‘빈자리’에 의해서 의미를 생산한다. 이러한 전달형태는 환기적 성격을 띤다. 침묵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어휘를 반복함으로써 의미를 상승시키는 가운데 공백은 일종의 ‘흡인작용’으로 독자를 침묵의 공간으로 빨아들인다. 즉 공간은 침묵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언어의 간명화(집중과 단순성인)를 새로운 형태의 창작의 본질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상금 독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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