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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폭발이 바꾼 역사의 흐름
  • 이강룡 역사전문작가
  • 승인 2015.05.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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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한반도에서는 백두산이 다시 끓어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하부에 대규모 마그마 층이 발견되면서 향후 폭발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화산 폭발이 초래하는 재앙은 지역 주민들의 비극으로 그치지 않는다. 화산이 폭발하면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어 해를 가리므로 광범한 지역에 저온 현상이 발생한다. 저온 기후는 흉작으로 이어지고 곡물 생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공급 가격이 치솟는다. 인민의 삶은 궁핍해지며 사회에는 불안이 가득 찬다. 이것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되풀이된 과정이다.

  서기 79년에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언급하며 하늘을 가린 화산재와 저온 현상에 관해 기술했다.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의 기록에는, 재위 10년째이던 536년 내내 태양이 빛을 잃어버려 달처럼 보였고 세상은 어두워졌다는 내용이 있다. 기후학자들은 그 무렵 발생한 파푸아뉴기니의 라바울 화산 대폭발이 지중해 일대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정한다. ‘대제’라고도 불린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도 저온 현상이 빚은 식량 생산 감소와 그와 맞물려 발생한 영양실조와 흑사병 창궐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기상학자인 프랑스와 메테스는 1300년대 초반부터 180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를 ‘소빙하기’라고 규정했다. 소빙하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평균 기온이 매우 낮은데 그중에서도 극심한 기온 하강을 기록했던 연도를 검토하면 대규모 화산 폭발 시기와 겹친다. 1600년의 페루 우아이나푸티나 화산 폭발도 그중 하나인데 반경 20km가 잿더미로 변했고 화산재는 볼리비아와 칠레 하늘까지 덮었다. 1815년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의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다. 해발 4,000m에 달하던 산의 상부가 날아가 버려서 높이가 2,851m로 줄었을 정도이니 그 폭발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성층권까지 치솟은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어 인도네시아는 이틀간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대기 온도는 계속 내려갔고 흉작이 찾아왔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 농민들을 수탈하여 커피와 향신료 같은 생산물을 본국으로 실어 날랐다. 강제 재배제라 불린 잔혹한 식민 정책으로 인도네시아 농민들의 삶은 점점 궁핍해졌다. 인도네시아 농민의 누적된 분노가 마그마처럼 꿈틀거리다가 화산 폭발과 더불어 용암처럼 솟구쳤다. 네덜란드의 핍박에 맞선 대규모 농민 봉기가 일어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화산 대폭발은 유럽과 아메리카까지 영향을 미쳤다. 유럽과 아메리카 역사는 1816년을 ‘여름이 사라졌던 해’로 기록한다. 세계 각지에서 흉작이 발생했고 이상 저온 탓에 이 기간에 무수한 생물 종이 절멸했다. 한파와 전염병이 인류 삶의 기반을 뒤흔들었다. 이때 유행한 대표적인 전염병이 콜레라다. 
  인클로저 운동이 확산되던 유럽의 1800년대 초반은 농민들이 터전을 잃고 대도시의 하층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던 시기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던 빈민들이 지하실 같은 곳에 밀집하여 같이 살았기 때문에 콜레라는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퍼졌다.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는 한파와 함께 찾아온 잎마름병 때문에 기르던 감자가 다 죽어버렸다. 단일 품종에 식량 공급을 의존하던 농민들은 대기근이라는 비극 속에서 생지옥을 경험했다.  
  1780년대의 평균 기온 역시 매우 낮았는데 1783년에 발생한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 폭발과 일본의 아사마 화산 폭발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아사마 화산이 폭발하면서 일본의 쌀 수확량이 급감했고 곡물 가격은 당연히 폭등했다. 1787년까지 이어진 대기근 시절에 무수히 많은 농민들이 굶어 죽었고 2,600만 명을 넘던 일본 인구는 2,3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시기에 일어난 농민 봉기로 정권이 무너졌다. 1789년에 폭발한 프랑스 민중의 분노 역시 그 연원이 비슷하다. 저 멀리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라키 화산 폭발이 일조했다. 라키 화산 폭발로 저온 현상이 지속되어 유럽의 곡물 값이 치솟았고, 물가는 1789년이 될 때까지 계속 오르다가 7월 14일에 정점을 찍었다. 프랑스 인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바로 그날이다. 역사상 대규모 화산 폭발 이후에는 성난 민심도 함께 폭발한 사례가 많다. 인간의 미약한 힘으로  자연의 재해를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미약하더라도 그 힘을 모으면 적어도 사회의 재해를 막는 일은 가능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강룡 역사전문작가

이강룡 역사전문작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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