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8년 보수동 책방 골목에 마련된 양협 건물의­ 1층은 협동서점으로, 2층은 사무실로 사용됐다

  독서모임으로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으나 유신 정권에 의해 해산된 부산양서(良書)협동조합(이하 양협)이 재건된다. 1970년대 창발적인 부산 내 민주화·문화 운동을 벌였던 양협은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문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보기 드문 경우. 독서를 매개로 한 시민문화운동을 통해 민주시민 양성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러한 양협 재건준비위원회(이하 재건위)가 구성되어 지난달 23일 재건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이 단체는 영화 <변호인>에서 ‘진우(임시완 분)’가 활동했던 독서 모임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양협이 유신 정권에 의해 부마민주항쟁의 배후로 지목돼 해체된 것은 지난 1979년 11월 19일. 해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건 이후의 어수선한 시국 하에서 사실상 정국을 장악했던 신군부가 기획,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체 이후, 여러 차례의 재건 시도에도 불구하고 신군부에 의해 연장된 억압 통치 아래의 당시 시대적 분위기는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오는 7월 4일 창립총회를 갖는 양협의 재건은 장장 36년이 걸린 셈이다.
  재건되는 양협은 크게 세 가지를 목표로 한다. 6월 항쟁 이후로 달성된 정치적 민주주의의 경제·사회·문화 전반으로의 진전과 확대가 그 중 하나다. 양협 재건위 최준영 위원장은 “양협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 달성하지 못한 상향식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양협은 창립 발기문을 통해 ‘경제적 양극화와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와 기업 문화에 대한 반성’, ‘협동과 상생의 도시 부산의 문화 창달과 인문학 진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널리 알렸다. 양협 발기인으로 참여한 팔복교회 김형기 목사는 이런 단체의 정신을 두고 ‘심장을 가진 협동조합’이라 말했다.
  36년 만의 양협 재건 과정은 가히 극적이다. 그 시작은 1년 전 최준영 위원장이 김형기 목사와 만난 자리에서 불현듯 재건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비롯되었다. 이에 따라 70년대 양협을 이끌었던 관계자들을 주축으로 최근 1년 가까이 세계 여러 협동조합의 성격과 특징을 탐구하고, 대안적인 협동조합을 모색하기 위한 공부 모임을 가졌다. 김 목사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를 매개로한 협동조합이 꼭 필요하다”고 밝히며 이 같은 과정을 소개했다. 양협 김희욱 전무는 “민족 문화 운동 차원에서 우리 조합이 한국판 르네상스를 일구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그 포부를 밝혔다.
  새로운 양협의 부지로 예정된 곳은 과거 양협이 있었던 보수동 책방골목 일대이다. 창립 발기인 중 한 명인 강수걸 씨가 운영하는 지역 출판사 ‘산지니’가 출판 관련 후원을 맡게 된다. 창립과 함께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독서, 토론, 강연, 세미나 등 다양한 활동이 예정되어있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 강좌 역시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위원장은 “전국적으로 양협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편, 협동조합대학 설립도 먼 시일로 염두해 두고 있다”고 밝혔다.
  청년의 양협 가입 요건은 협동조합원으로서의 기본 교육 참여와 가입비, 출자 및 구좌 개설을 위한 비용 등을 합해 15,000원 정도. 70년대 양협의 주축이었던 재건 발기인들은 어느덧 50대에서 60대에 이르렀다. 김 목사는 “문화 운동의 주역은 청년층이 되어야 하고, 우리는 그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청층의 적극적 참여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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