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오정희 저/2009/문학과지성사

 

"우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소리 내지 않기. 소리 내지 않고 웃기. 소리내지 않고 울기. 소리내지 않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한 방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새> 중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저/2003/문학동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게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로자 아줌마 곁에 앉아 있고 싶다는 것.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 <자기 앞의 생> 중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은 바로 성장소설’이라고. 성장통을 겪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한 번쯤 방황하고 아파하는 성장의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여기,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힘들게 성장하고 있는 ‘우미’, ‘우일’ 남매와 열네 살 소년 ‘모모’의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 

 
날고 싶지만 날 수 없는
 
  지나치게 일찍 세상의 어둠을 접한 아이들이 있다. <새>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두 남매가 겪는 고단한 일상에 대한 내용이다. 열두 살 소녀 ‘우미’는 남동생 ‘우일’과 함께 달동네 단칸방에서 살아간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사창가에서 만난 여자를 아이들의 새엄마로 들인다. 새엄마마저 가출하자 아버지는 그 여자를 찾아 떠나고, 어린 남매는 스스로 생을 견딘다. 열두 살 소녀 우미는 동생 우일에게 엄마이자, 선생님이자, 누나다. 동생에게 밥을 먹이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고, 동생의 삶을 책임진다. 
  우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소리 내지 않기. 소리 내지 않고 웃기. 소리내지 않고 울기. 소리내지 않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한 방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새> 중
  잔인한 현실을 담담하게 읊는 아이의 말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옆방 이씨 아저씨가 키우는 새장 속의 새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름을 버겁게 이고 사는 아이 우미와 비슷하다. 검은 천을 씌워 놓으면 밤인 줄 알고 계속 자고, 거울을 들여놓으면 친구인 줄 알고 반가워하는, 바깥이 보이지만 날아갈 수 없는 새. 동생 우일은 하늘을 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지만 죽음을 맞고, 우미는 정신을 놓는다. 누구보다 더디고 아프게 자라던 아이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슬프다. 여느 희망찬 성장소설들과 달리 아픈 성장 이야기다. 
 
  사랑 속,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은 소년 ‘모모’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담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긋지긋한 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열네 살 모모는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산다.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둘은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지만, 로자 아줌마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가 해준 말을 생각하며 로자 아줌마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모모의 주위는 사회에서 소외된 주변인들로 가득하다. 창녀, 아프리카 이민자,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유태인…. 하지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적이고 사랑스럽다. 어느 하나 빠짐없이 막막하고 기구한 삶들이지만, 모모는 어떤 생이든 사랑할 사람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은 계속해서 어둡고 불행한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그 속에서 모모가 보여주는 로자 아줌마에 대한 사랑은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답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게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로자 아줌마 곁에 앉아 있고 싶다는 것.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 <자기 앞의 생> 중
 
  자기 앞의 생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 모모는 그것만큼 인생에서 힘든 것도, 아름다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빌어먹을 생’을 덤덤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모는 남아있는 자기 앞의 생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두 소설은 모두 황폐하고 구석진 삶의 현장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세상의 가장자리, 남루한 곳에 있는 생도 충분히 가치 있다. 어린 나이에 인생의 슬픔, 아픔, 절망을 겪으며 성장하는 우미 남매와 모모의 삶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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