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학을 바라보면서 철학과의 한 교수로서 필자는 심사가 복잡하다. 도대체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해서이다. 대학은 이런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한 인상적인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제목은 <변혁운동의 거점에서 신자유주의 지배공간으로>였다. 80년대의 대학은 학생운동의 거점이자 사회 변혁의 요구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정권에서 대학은 신자유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육은 이제 ‘서비스상품’으로 설정되었으며, 교수는 그래서 교육상품의 ‘공급자’, 학생은 ‘소비자’가 되었다” 필자 개인적 경험으로도 우리학교가 2000년도 학번 이후로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더 이상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취미나 취업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래서 이제 대학은 더 이상 ‘진리의 집’도 아니고, ‘비판정신’의 함양을 위한 장소도 아니게 됐다. 다만 신자유주의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 편입돼 시장의 논리에 따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70년대 학번인 필자가 단순히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70~80년대 한국 대학의 공과는 역사가 물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선두 지휘하고 우리학교 본부도 그에 슬금슬금 따라가고 있는, 작금의 대학의 구조조정, 개혁의 논리는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이 필자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대학생은 최종적 소비자가 아니다. 아니 그도 기업에 팔릴 수 있어야만 한다. 이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 지난 4월에 사퇴한 박용성 중앙대 전 이사장이다. 그는 2004년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이자 학문의 전당이라는 소리는 이미 옛이야기”라며 “이제는 (대학이) 직업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고객은 기업이며 대학은 기업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는 논리이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자면 국가를 이끄는 중심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 신념을 그는 2008년 두산 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실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사장으로서 그의 목표는 기업인들에게 “중앙대 애들 뽑아놓으니 숫자는 좀 알더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그 결과 중앙대는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통해서 university가 아니라, 급격히 ‘중앙 경영대’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당연히 취업률도 높아졌다. 그래서 그는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 논리가 어딜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졌었다. 그의 이러한 신념과 자신감 뒤에는 1996년 삼성의 성균관대 인수, 그리고 2013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서 성균관대가 1위를 차지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앙대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과 두산 자체의 위기에 부닥쳐 사퇴하고 말았다. 대학은 결국 기업이 아닌 것이다!그런데 우리학교에는 10·16 기념관이 있으며 제2도서관 앞에는 10·16 부마민주항쟁탑이 있다. 또한 우리학교의 교훈은 진리, 자유, 봉사가 아니던가? 

   
 주광순(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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