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 가면 흰색 수건을 돌돌 말아 머리에 뒤집어 쓴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일명 ‘양머리’. 이 ‘양머리’는 주원규의 소설 <열외인종 잔혹사>에서 아주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하지만 찜질방의 양머리와 소설 속 양머리는 사회적 위치(?)가 조금 다르다. 양머리는 몇 년 전 최신 트렌드로 등장하더니 어느새 찜질방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반면 소설 속 양머리는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로 취급받으며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만을 찾는 ‘열외인종’일 뿐이다.
  소설은 11월 24일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서술한다. 네 명의 주인공이 한 사건을 동시에 경험하고, 각기 다른 방법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다. 얼핏 그렇고 그런 무용담쯤으로 치부하기 쉽지만, 소설 속의 주요 사건인 ‘십 헤드 카니발(sheep head carnival)’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주인공이 네 명이나 되지만 어디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다. 매일 군복을 입고 좌익 빨갱이 소탕을 주장하는 퇴역군인 장영달, 제약회사 인턴 사원에 불과하지만 짝퉁 가방을 사기 위해서는 카드깡도 서슴지 않는 윤마리아. 약간의 알코올만 있으면 무엇이든 좋은 노숙자 김중혁과 고등학교를 중퇴한 열일곱 비행청소년 기무. 우리 사회에서 소위 ‘비주류’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쉬운 알바 찾기, 정규직 사수, 과거 자신의 직장에 방문, 게임머니 획득 등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11월 24일 코엑스 몰을 찾는다. 그리고 동시에 목격한다. 양머리 수백 명을.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양머리들은 코엑스 출입구를 차단하고 사람들을 감금한다. ‘혁명’을 이루기 위해 십 헤드 카니발을 개최한 것이다. 그들의 의식을 방해하는 자에게 총을 난사하는 등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 사회에서 쓰레기로 분류되는 열외 인간들’이 주축이 된 카니발. 이 카니발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은 가히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웃기지도 않을 만큼 기가 막힌 기계적 노동의 노예가 되어왔다. (중략) 그것만이 우리의 신이었고 동시에 우리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살면서 일부는 닭대가리, 말대가리, 또 일부는 양대가리가 되어가고 있다. 닭대가리는 흡사 무뇌아와 같으며, 양대가리는 목자를 잃은 채로 어느 순간 도살당할 비루한 운명의 결말을 기다리는 무지의 포로와 같다”
그리고는 말한다. 참된 혁명에는 언제나 숭고하고 불가피한 희생이 뒤따르니 희생하라고.
  아이러니한 것은, 양머리들이 혁명을 이룩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열내(列內)인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자본과 성공의 상징 코엑스 몰에는 주류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열외인종들로 가득했다. 열외인종을 대표하는 주인공 네 명 또한 코엑스 몰에 있었다. 욕망의 집결지에서 열외인종 양머리들은 혁명을 꿈꿨지만, 결국 그들이 분노를 표출한 대상은 열내인종이 아닌 열외인종이었던 것이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양머리들의 혁명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뉴스에서도 카니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다소 허무한 결말이라 느낄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 결말 또한 우리의 현실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카니발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 한 줄의 기록으로도 남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근로 조건 개선을 외치고, 청년들이 일자리 창출을 갈망하고,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주장해도 별 변화가 없는 지금 우리 현실이 극화된 것은 아닐까.
결국 이 소설은 지독하고 잔혹한 우리 현실의 은유다. 매혈로 밥 벌어먹는 노숙자나 정규직을 꿈꾸는 비정규직, 게임에 몰입해 가상현실과 현실을 분간하지도 못하는 청소년. 그들은 우리 옆에도 버젓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양머리가 되어 주류를 꿈꾸며 살아간다.
  빈부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일자리 찾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가 된 지금, 저자는 주류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지독한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은 이른바 ‘열외인간’이라는 유전자로부터 말끔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중략) 이 천민자본주의의 오물통 속에서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모두 열외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열외인종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필자 또한 이미 ‘열외인종’이며 ‘양머리’일 것이다. 십 헤드 카니발조차 열리지 않는 열외인종의 세상,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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