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인 올해, 한반도 국제정세는 되돌리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분단과 북핵 문제로 인해 지구 상에 유일하게 냉전질서가 유지되어 온 한반도에 미중 패권경쟁과 한일, 중일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반도 지정학은 ‘시계제’로 상황으로 빨려든 것이다. 

  한반도 상황이 이리된 근본원인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강한 견제 그리고 이 가운데 발생한 기존 동맹과 세력균형의 재편과정에 있다. 특히 중국의 빠른 부상은 두 측면에서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미일 동맹과 한미일 동맹 재강화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세계전략과 동북아전략의 수립 그리고 ‘조중동맹’의 재조정 노력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심각한 외교안보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첫째,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는 동북아 지역의 지정학적 중심축인 한반도에 외교안보적 지각변동과 단층활동을 야기하고 있다. 둘째, 지역패권을 넘어 세계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에게 미일 동맹 강화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며, 북한의 통제 불가능한 외교안보 정책은 용인되기 어렵다. 셋째,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멀어지는 변화와 와해된 조중러 동맹에 의지하기보다 핵개발을 통해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는 정책을 추구한 지 오래됐다. 그런데 북핵은 미중일의 한반도 지정학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리하면, 미중 패권 경쟁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미중일 간 새로운 힘의 배분 상황, 그리고 북핵이라는 통제 불능 변수는 동북아 지역의 외교안보적 지각변동과 함께 한반도의 지정학적 단층지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렇듯 복잡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중 견제는 강하고 신속하다. 이런 미국의 대응은 오랜 패권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조급함 속에 진행 중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의 조급함은 중국과 북한의 강한 반발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미사일 방어체제 건설추진은 중국과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렇듯 그 누구의 조급한 정책도 동북아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의 상승작용을 유발하는데, 그 결과는 한반도 지정학의 지각변동과 단층활동이 더욱 활성화되는 것이다.      
  객관적인 상황이 이러함에도 미국은 현재 미일 동맹을 전에 없이 강화하는 동시에 한미일 동맹의 재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 지점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첫째, 한국은 중국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동맹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정·지경학적으로 중국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건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와 동시에 북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미중 양국을 모두 필요로 하는 것이다. 둘째, 한국은 일본과의 과거 문제나 역사적 자존심 경쟁에서 다시 모욕을 용납하기 어려우며,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 및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한국은 한미일 동맹보다 한미 동맹을 더 중시한다. 하지만 미국은 북중러 견제를 위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려하고, 이보다 먼저 해양세력으로서 지정학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일본과의 동맹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미국은 전범국 일본의 과거문제보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일본을 적극 활용하는 정책에 우선성을 두고 있는 것인데, 이 말은 미국이 21세기 초중반 동북아 지정학에서 미일 동맹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결국 21세기 들어 한국은 쉽지 않은 외교안보적 도전에 직면해있다. 첫째, 과거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갈등 중인 한국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확대와 군사대국화 문제를 놓고 미국과 좁히기 어려운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한미 간에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차를 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문제는 한미 동맹에 미묘한 균열을 야기하는 암초와 같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을 바라보는 한미 간 견해차도 쉽게 조정되기 어렵다. 미국은 중국을 패권경쟁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어가는 상황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인정하겠지만 지정학적인 차원에서는 용납하기 어렵다. 한미 간 중국에 대한 시각차는 한미동맹의 영속성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장애물인 것이다. 셋째, 그래서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고차방정식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 진영논리나 단순한 비용·편익 계산일 수 없으며,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불충분한 단순 이분법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서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전략적으로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상황이 복잡할수록 기본에 충실하고 등잔 밑을 살펴야 한다. 주변 4강 관계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 화해협력과 평화번영의 길은 미중 패권 경쟁이 야기하고 있는 동북아 지각변동의 충격을 완화하고, 한반도에서 지정학적 단층활동이 활성화될 균열과 틈을 미연에 봉합해줄 가능성을 우리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진시원 일반사회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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