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봤다. 1975년에 나온 영화는 소설가 최인호가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철학과 1학년인 병태와 영철은 단짝 친구다. 함께 미팅에 나가고, 병무청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며, 목욕탕에 들러 서로의 등을 밀어준다. 선후배들과 내기 당구를 치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며, 과 대항 축구대회도 나간다. 취업과 연애, 군대와 학점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은 40년이 지난 2015년의 대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동해에 고래가 있나요?” “있, 있, 있구말구요. 동해엔 고래가 한 마리 있어요, 예쁜 고래 한 마리가요. 그걸 잡으러 떠날 거예요” (‘바보들의 행진’, <최인호 시나리오 전집> 중)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으며, 대학교는 돈이 많은 아버지의 기부금으로 들어갔고, 말까지 더듬는 영철에겐 ‘고래를 잡으러 가겠다’는 꿈이 있다. 최인호가 가사를 쓰고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이 바로 영철의 테마곡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이 노래는 유신정권의 암울한 시대 상황과 조응하면서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보이는 것 모두가 돌아 앉았네’에 이어 나오는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는 희망 없는 시대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영철의 결연한 의지처럼 느껴진다. 원작자인 소설가 최인호가 1970년대를 바라보는 세계관이 이 노래에 집약되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학생들이 감상문을 썼다. 병태와 영자의 키스 장면, ‘왜 불러’가 나오는 두발단속 장면에 대한 소감과 영철의 ‘고래사냥’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한 학생은 동해에 몸을 던지더라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던 영철이 오히려 부럽다고 했다. 꿈조차 마음대로 꿀 수 없는 자기 세대에 대한 연민과 한탄, 분노의 목소리였다.
문학평론가들은 2000년대 한국 소설의 키워드를 ‘루저, 백수, 삼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로 꼽는다. IMF 이후 붕괴된 가정경제와 좁아진 취업문, 치솟는 등록금 앞에서 20대들은 그동안 청춘의 특권이라 여겼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됐다. 20대에 등단한 젊은 작가들이 양산되고 있지만, 그들이 그려내는 당대의 지형도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1970년대의 송창식이 ‘고래사냥’을 불렀다면 2010년의 장기하와 얼굴들은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 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싸구려커피’)’를 노래하고 있다.
소설가 김애란의 작품은 이런 청춘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서른’, <비행운> 중)
‘서른’의 주인공은 한때 보습학원 강사로 일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주인공도 한때는 영철처럼 ‘고래사냥’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을 다단계회사에 저 대신 집어넣고 탈출하는 것으로 갈무리 된다. 그 학생이 실적을 강조하는 회사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엄청난 빚, 파탄 난 인간관계에 괴로워하다 자살 시도를 했을 때, 소설은 주인공이 읊조린 독백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준다. 다단계회사를 탈출한 ‘나’와 자살을 시도한 학생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던, ‘겨우 내가 되겠지’로 지칭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인 것이다.
<서른>의 ‘나’에게 영철의 ‘고래사냥’을 불러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40년이 지나도 청년을 옥죄고 있는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때도 지금도 영철과 병태의 노래는 전설 속의 멜로디이다. 하지만 토익책과 인턴서류를 앞에 두고도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그 멜로디를 어찌해야 할까. 모두가 비웃는 ‘바보들의 행진’이 되더라도 다시 한 번 그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오선영 소설가 |
오선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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