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한쪽에 꽂혀있던 책 <동물농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입시를 위해 주제와 각 동물이 상징하는 바 따위를 외우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그냥 ‘그런 내용이구나’하고 넘어갔었는데, 이 시점에 다시 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소설 속 내용과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소설 <동물농장>을 통해 혁명이 성공을 거두었으나 변질되어 극단적인 전체주의로 치닫고 있던 소비에트연방을 비판했다.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동물농장을 세우지만, 권력을 잡은 동물들이 이전보다 더 악독한 독재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그들 스스로 정한 약속들이 돼지들에게만 유리하도록 교묘하게 변해가도 눈치채지 못하거나 그냥 받아들인다. 무지와 방관의 대가는 비참했다. 지배계급인 돼지들은 인간이 행하던 모든 악습을 똑같이 반복했으며, 그것을 수용한 피지배계급 동물들은 그대로 착취당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1945년에 출간된 이 소설 속 이야기가 70년이 지난 2015년의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잇따른 총리 후보 낙마, 세월호 참사, 자원외교 비리, 그리고 ‘성완종 리스트’까지.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4·29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과거로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해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등 자신의 최측근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연루됐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그저 옛날부터 있었던 문제라는 것이다. 주특기인 ‘유체이탈’ 화법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리고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이 문제라며 노무현 정부를 규탄해 사태의 본질을 호도했다. 야당의 잘못으로 몰아가 재·보궐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민들이 이렇듯 한심한 작태를 목격했으니 투표로써 정권을 심판할 줄 알았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속이 빤히 보이는 말이었으나 사람들은 한없이 관대했다. 이쯤 되면 정치인들만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오랜 명제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적용되지 않는다. 보수는 부패로도 승리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것이 우리의 수준이다. 국민들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지도자를 바라만 보고 있다. 기성세대는 변함이 없고, 청년들은 관심이 없다. 기득권층인 기성세대야 가진 것을 지키고자 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청년들의 무관심에는 일말의 명분조차 없다. 썩을대로 썩은 정권을 심판하지도, 대안을 찾는 새 세력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아무 비판 의식 없이 그저 ‘돼지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조지 오웰은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권력이 부패하는 순간 저항하지 않는 국민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전체주의가 출현한다’고 경고했다. 70년 전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이야기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2015년판 동물농장이 여기에 있다. 
   
 이예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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