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꽃> 하성란 저/1999/조선일보사

   고백하건대, SNS를 통해 만난 지 오래된 사람의 사생활을 염탐한 적이 있다. 어떻게 지내는지, 무얼하고 사는지 그들의 소식을 SNS를 통해 전해 듣는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통신이 발달되어 있지만 실제로 직접 만나거나 연락하는 사람들의 수는 그대로다. 메신저 하나 혹은 전화 한 통이면 서로의 목소리를 교환할 수 있는데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곰팡이 꽃>의 주인공도 비슷한 처지였다. 베란다에 걸터 선 주인공은 놀이터에 있는 여자를 관조하며 혼잣말을 한다. 한 동뿐인 아파트에서 다가가지도 말을 걸지도 않은 채.
  오늘 저녁 강낭콩 밥을 지으시게요? 남자는 여자에게 넌지시 말을 건다. 하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여자에게까지 남자의 목소리는 가 닿지 않는다. 그 맛을 어떻게 잊겠어요? 이 사이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죠. 저에게도 좀 나눠주시겠어요? 남자는 베란다 창가에 선 채 계속 입술을 달싹거린다. … 다행히 여자는 아까부터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곰팡이 꽃> 중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인공의 괴짜스런 행 동은 필자의 ‘SNS 엿보기’를 넘어 선다. 주인공은 남들이 야무지게 싸놓은 쓰레기봉투를 자신의 화장실로 들고 와 쓰레기들을 모두 풀어헤친다. 그러곤 마치 셜록 홈즈처럼 쓰레기를 통해 이웃들의 사생활을 추측하고 메모한다. 심지어는 ‘직장 여성들은 양 날개가 달린 생리대를 쓴다’는 그만의 결론도 내놓는다. 이렇게 적어 내려간 정보들로 주인공은 어느새 한 여자에 대해 애인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여자가 다이어트 중이라는 점, 바다가 아닌 산을 좋아하는 점 등을 아는 등 주인공과 여자가 오히려 더 가까운 사이인 것 같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소통’의 문제다. 초인종 소리 하나에도 민감해 하며 문을 열기 전 감시경으로 꼭 외부의 상황을 확인한다. 사회로 나가는 것, 타인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인과도 많이 닮아있다. 책에서 나오는 무정한 이웃들의 관계는 우리의 거울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단절시키며 불필요한 관계를 맺는 것을 꺼린다. 남자의 행동은 현대인들의 심리와도 많이 닮았다. 그를 통해 우리는 리얼리티를 좋아하는 현대인의 관음증을 볼 수 있다. 이 스릴 넘치는 욕구를 그와 우리 모두가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가 지닌 진실과 감정을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고 있다. 쓰레기를 뒤지는 주인공도, 주인공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든 세대주도, 2015년에 살고 있는 우리도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속에만 묻혀둔다. 밖으로 내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쓰레기를 열심히 뒤지며 말하는 부분이 떠오른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니까. 진실이란 것은 쓰레기봉투 속에서 썩어가고 있으니 말야”    
하성란 작가의 <곰팡이 꽃>이 단막극 KBS ‘신 TV문학관-곰팡이 꽃’으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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