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부터 15년간 계속된 베트남전쟁. 우리나라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이곳에 국군 30만 명을 파병했습니다. 당시 명성을 떨쳤던 ‘강인한 한국군’의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우리들이 잘 모르는 진실이 있습니다. <부대신문>은 지면을 빌려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280여 명의 시민들이 베트남전 학살 현장의 생존자 증언을 듣고 있다

 
  지난 8일, 시민 280여 명이 부산민주공원에 모였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응우엔 딴 런(베트남, 64) 씨는 1,004명이 목숨을 잃은 빈안 학살, 응우엔 티 탄 (베트남, 55) 씨는 70여 명이 죽임을 당한 퐁니·퐁넛 학살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들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기억을 풀어놓자, 공간은 이내 흐느낌과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들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원한과 증오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고통은 한국의 전쟁 피해자들의 고통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 피해자들이 함께 고통을 나눌 때, 그 고통이 덜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오후 4시쯤, 총성이 시작됐다. 이른 새벽에 이미 한 차례 포격이 지나간 후였다. 어머니는 여동생과 나를 다시 땅굴 속으로 이끌었다. 폭발음은 점점 가까워졌다. 귀를 찢을 듯한 소리였다. 총성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땅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입술 사이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동생과 나의 입에 수건을 물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이 난에서 아이들을 구해주세요”
기도는 통하지 않았다. 땅굴 속으로 총부리가 쓱 들어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더니 밖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머리에 철모를 쓰고 얼룩덜룩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어깨에는 호랑이 마크가 있었다. 따이한(한국) 군인이었다.

따이한은 우리 가족을 총으로 겨누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마을의 다른 집에 들러 노인과 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갔다. 논두렁에 도착했다. 이미 스무 가족 정도가 모여 있었다.
“고개 숙여!”
따이한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게 했다. 따이한의 얼굴을 쳐다봐서도 안 됐다. 갑자기 따이한이 우리 주변을 에워쌌다. 불안해졌다. 한 사람이 뭐라고 소리치더니 총이 난사되기 시작했다.
탕!탕!탕!쾅!...
주변이 온통 포연으로 가득했다. 연기 사이로 마을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사람은 팔이 잘리고, 어떤 사람은 배에서 창자가 튀어나왔다. 깨진 머리 사이로 뇌수가 흘러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비명과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아수라장이었다. 발 뒤에서 뭔가가 나를 툭 쳤다. 나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곧바로 수류탄이 터졌다.
“아악!”
수류탄 파편은 나의 다리를 덮쳤다. 세상이 아득해졌다.

눈을 뜨니 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불에 탄 집 대신 작은 아버지 집으로 옮겼다. 옆으로 어머니가 보였다. 하반신이 사라진 상태였다.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 말을 하지 못했다.
“꺄아아악!”
여동생은 미친 사람처럼 마구 비명을 질렀다. 머리가 깨져있었다. 자정 무렵이 되자 여동생의 비명이 멎었다. 마을 사람들은 동생을 돗자리에 둘둘 말아 밖으로 데려갔다. 마을 사람들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을 때,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를 돗자리에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집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가족도 집도 모두 잃었다. 얼굴을 감싸 안고 울었다.
 
 
홀로 4남매를 키워온 어머니는 우리를 이모에게 맡겨두고 물건을 팔기 위해 시장에 나갔다. 이모와 함께 집 안에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이모는 우리를 땅굴로 데려갔다.
  퉁. 퉁. 퉁.
  땅굴 위에서 소리가 나더니 굴 입구로 따이한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들은 수류탄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땅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수류탄을 본 이모는 아이들을 한 명씩 올려 보냈다.
 
 ­탕탕!탕!탕!
  사람들이 입구 밖으로 나갈 때마다 따이한이 총을 쐈다. 오빠는 나가자마자 대나무 숲으로 달렸는데 총을 맞고 엉덩이가 날아갔다. 물가 쪽으로 뛰었던 남동생 엠라는 입이 사라져 있었고, 언니는 집 앞에 쓰러져 있었다. 엠라가 숨을 쉴 때마다 피가 울컥 울컥 쏟아졌다. 나는 배에 총을 맞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따이한은 우리집에 불을 붙이려 했다. 한쪽 팔에 총을 맞은 이모가 불을 붙이려는 따이한을 막아섰는데, 갑자기 따이한이 칼을 들었다. 이모는 칼로 난도질당했다. 무서워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엠라를 살리려면 엄마를 찾아야해”
  오빠는 엄마를 찾으러 가자고 했다. 내 몸은 너무 작아 동생을 안을 수 없었다. 결국 동생은 두고 오빠와 엄마를 찾으러 갔다. 걸을 수 없었던 오빠는 내 옆에서 기었다.
 
  엄마!엄마!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보니 집 한 채가 나왔다. 따이한이 물소에 가로막혀서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풀숲에서 숨어 있다가 따이한이 떠난 후, 그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아래 땅굴에는 마을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내게 물을 건넸다.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이자 내 배에서 창자가 흘러나왔다. 두 손으로 창자를 부여잡고 다시 엄마를 찾으러 나섰는데, 뒤를 돌아보니 마을 사람들이 오빠를 옮기고 있었다. 엄마도 없는데 오빠마저 잃어버릴 수 없었다. 오빠를 향해 달려가는데 창자가 계속 튀어나왔다.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너희 어머니는 살아있어
  사람들은 나를 병원으로 옮겼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엄마가 살아있다고 했다. 엄마는 살아있다는데 왜 나를 보러오지 않는 것일까. 오빠의 생사 여부도 알 수 없었다. 미국의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문도 있고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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