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는 사고도 많고 재난도 많지만,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사건’이다. 진실을 그림으로 기록하기 위해 붓을 들게 됐다”

  망미동 병무청 앞, 미용실과 구멍가게를 지나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주택가 사이에 작은 공간이 하나 있다. 자그마한 방 두 개 크기의 공간. 김형대 화가의 작업실이다. 지난해 4월 16일 이후, 그 날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고 있는 미술작가 김형대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4월,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두 달간 그는 붓을 들지 못했다. 배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팽목항에 다녀온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진실을 그림으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김형대 작가는 “문학가든 화가든 모두 당대 현실을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부터 그리기 시작한 ‘세월호 연작’은 어느덧 15점에 이르렀다. 15점의 연작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여느 그림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일반 한지보다 두꺼운 삼합지 위에 고운 흙을 칠하고 말린 뒤 분채로 표현한 것이다. 분채는 일반 물감보다 색을 만드는 데 오래 걸리고 여러 번 칠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강렬한 색감을 나타낼 수 있다. 그림 속, 붉은 목단꽃으로 가득한 꽃밭 사이로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목단꽃은 색이 화려하고 꽃잎이 활짝 피어 부귀영화와 자손 번성을 상징한다. 아이들의 초상화마다 작가가 적어놓은 설명도 있다. ‘준영이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나고 8일째인 4월 23일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다. 준영이의 생일날이었다’ 김형대 작가는 “원래 사람이 사람을 그리는 인물화가 가장 재미있는데, 아이들을 그릴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연작에는 아이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도 드러난다. ‘그날’이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희생된 학생들과 피눈물 흘리는 유가족, 그리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있다. 김형대 작가는 “우리 사회가 곪아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학시절 민중미술을 접하면서 평생 세상에 대한 그림을 그리리라 다짐했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부산의 골목, 산복도로 등 서민에 대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사건 후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현실을 응시하기로 했다. 작가는 “앞으로 생명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할 예정”이라며 “그림은 시각적 언어이기 때문에 글보다 울림이 커서 의미를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연작 전시회는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오는 16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그런데 장소가 조금 특이하다. 미술관도, 갤러리도 아닌 망미동 그의 작업실이 전시 장소다. 몇몇 화랑에 전시를 제안했으나 ‘이런 류의 그림은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현실의 권력을 비판하는 민감한 문제가 담겨 있어 다들 꺼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냥 동네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작업실을 개방하기로 했다. 김형대 작가는 “작업실에서 힘들게 그린 그림을 관람객이 거의 안 오는 화랑에서 전시하니 허망하더라”며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도, 근처 학교의 여고생들도 모두 마음 편히 들렀다 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림 또한 대중과 소통하는 수단 중 하나이기에 관람객이 없으면 전시의 의미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형대 작가는 “언젠가는 바닷속에서 죽어간 304명을 모두 다 그려 유가족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김형대 작가가 그린 ‘천개의 바람이 분다’. 노란색 리본으로 묶인 천 개의 손이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손바닥에 달린 눈에는 재해를 막아주길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있다

 김형대 작가는 지난해 6월부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그리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총 15점의 ‘세월호 연작’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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