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드라마는 ‘여자들의 전쟁’, 엄밀히 말하면, 여자들‘간(間)’의 전쟁이 주를 이룬다. ‘좋은’ 드라마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드라마가 여기에 해당되며, 특히 이와 같은 드라마는 여성 시청자들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인식이 강하다. 드라마 속 여성들은 가족이라는 커뮤니티와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녀들에게 가정에서 벗어난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청률 경쟁이 심해지면서, 시청자들이 비교적 쉽게 분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러한 드라마 제작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여성의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어 반갑다. 바로 KBS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다. 드라마 제목부터가 심상찮다. 기존의 많은 드라마가 이분법적 시각으로 여성의 삶을 보여준 것에 비해,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착하지 않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 흥미롭다. 삼대에 걸친 여성의 삶, 특히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의 다양한 삶과 선택을 보여준다. 물론 베테랑 연기자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와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폭력’과 ‘계급’이 인간을 어떻게 완성시키는가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고등학교 선생님과의 갈등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김현숙(채시라)은 임신까지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린나이에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는 선생님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맞섰음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내에서 튕겨나간다. 결국 고둥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일찍 임신을 했다는 경험은 그녀를 가정 안에만 머물게 하며, 남편과 자식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키는 콤플렉스 덩어리로 만들었다. 한 남자 김철희(이순재)를 사랑하거나 결혼한 두 여성, 강순옥(김혜자)과 장모란(장미희)은 나이가 들어 우연한 계기로 같은 공간에서 같이 지내게 된다. 두 사람 역시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를 증오하지만, 서로를 밀어내지 못하고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이상한’ 삶을 살고 있다. 이와 같이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삶에서 경험한 폭력이나 배신, 폭언의 기억이 제대로 치유되지 못하고, 결국 불안한 현재의 삶을 살아간다. 등장인물들이 우울한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계속 회상해야만 하는 이유는 압축적 근대화 시기를 살았던 개인들에게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김현숙의 삶을 통해서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불가능했던 과거, 제도가 수행하는 폭력은 문신처럼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의 삶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김철희를 통해서는 강요된 남성의 역할 수행이 갖는 문제도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기억상실’에 걸려 과거를 망각한다. 그 외에도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편견과 폭력으로 인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간다. 첩의 딸이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실패한 장모란, 자신이 원하는 문화를 향유할 기회조차 없었던 고등학생 김현숙, 그리고 자신의 학생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권력욕에만 눈이 멀었던 고등학교 선생 나현애(서이숙) 역시 폭력과 욕망이 낳은 괴물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한 집안에서 다섯째 딸로 태어나 지긋지긋한 가난과 차별로부터 벗어나길 원했던 나현애가 선택한 해결방법은 폭력이다. 나현애의 이러한 폭력적 욕망은 김현숙에게 전이되고, 김현숙 역시 자신의 딸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딸의 삶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딸인 정마리(이하나)가 교수가 되기를 원하는 그녀의 소망은 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선택이자 강요였다. 이렇게 폭력은 ‘유사-행동’을 보이며 계속 타인에게 전이된다.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괴물’로 성장한 고등학교 선생 나현숙, 통제와 억압적 환경에서 자란 김현숙은 현재의 삶 속에서도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하는 점은 폭력의 수행공간이 학교와 가정이라는 점이다. 쉽지 않은 여정이겠지만, 작가가 어떻게 이들을 화해로 이끌지, 폭력적 경험과 기억의 치유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시청자인 ‘나’ 역시 ‘폭력’을 외면하거나 잘못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폭력을 수행하는 ‘주체’가 된 것은 아닌지 진지한 ‘자기검열’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구성원에게 행사되는 ‘폭력에 대한 치유’가 필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종임 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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