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되살아나는 생명의 계절, 4월이다. 꼭 일 년 전, 세월호가 침몰했던, 우리 모두가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생명들이 대책 없이 수장당했던, 그 4월이 돌아왔다. 그러나 여태 어두운 바닷속에 그대로 남겨져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져 가고, 이 모두를 지켜보는 이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는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동안 우리 사회가 보여준 대응이다. 기껏해야 몇몇 책임자를 찍어 쫓아 처벌하고, 언제나 그렇듯 관련된 비리 몇 건을 밝힌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무슨 거창한 대책이랍시고 관련 기관을 없애고, 새로운 부처 하나를 급작스레 만들어 냈다. 그동안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조사위원회를 두고 정치권은 한참을 다투었고, 특별법이니 시행령이니 온갖 제도를 두고 시끄럽다. 사고의 본질과 관련된, 제대로 된 그 무엇 하나 마련하고 실행한 것이 없이, 마침내는 보·배상금액을 발표하여 함께 죽지 못한 이들의 상처 난 가슴에 소금을 뿌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월호의 침몰이 우리 사회를 꼭 그대로 반영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배를 책임진 선장과 대부분의 간부 선원들은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다. 저들만 살겠다고 수백 명의 생명을 뒤로한 채 모른 척 탈출했다. 대표적으로 IMF 사태가 그렇지 않았던가. ‘한국’호가 침몰의 위기로 다가가고 있는데도 ‘괜찮다, 가만히 있으라.’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책임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가.
  흔히 그렇듯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사람이다. 세월호의 침몰이 단순한 ‘사고’가 아닌 복잡한 ‘사건’인 까닭은 사고, 출동, 구조, 조사, 수습… 그 모든 과정의 핵심이 결국은 사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서 사고가 사건이 되게 만든 구조작업과 조사, 수습 등 모든 과정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인재’를 새겨보아야 한다. 그 진실을 밝혀야 할 2015년 우리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되어야 한다.
  T. S. 엘리엇의 4월도 잔인했다. 삶의 의욕과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만물이 되살아나는 생명의 계절 4월이기에 오히려 잔인했다. 진정한 생명은 되살아나지 않고 황량한 추억으로 고통만 커지는 <황무지>의 시간이기에 잔인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버려진 땅, 쓰레기의 땅, ‘황무지’가 아니라 ‘금수강산’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 미래를 살아갈 우리의 청춘들에게 똑같은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2015년 우리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되어야 한다.
  죽어서 떨어지는 새 한 마리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 그 여린 죽음의 진실도 모른 채 세월호 배 무게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가슴 깊숙이 가라앉히고 살아야 할 삶보다 더 무거운 삶도 없다. 살아남은 이들이 죽은 이들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으려면, 저 시린 죽음의 무게를 딛고 일어설 수 있으려면, 죽은 이들의 죽음을 온전한 죽음으로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월호의 진실은 ‘인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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