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4월은 온갖 봄꽃이 만개하는 아름다운 시기이지만, 제주민에게 4월은 온갖 묻어둔 상처가 쓰라리게 되살아나는 아픔의 시간이다. 제주는 해방 이후 남한에 단독으로 정부를 수립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끝까지 저항했던 지역이다. 거대 세력에 저항한 대가는 너무나 참혹했다. 미군과 대한민국의 초대 정부의 무차별 탄압으로 제주도민의 10퍼센트가 목숨을 잃었다. 4·3이라는 비극은 1948년 4월 3일에 벌어진 사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제주4·3사건 특별법은 4·3을 이렇게 규정한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나 다름없는 1950년의 거대한 전쟁 이후 한반도의 운명은 결국 분단으로 귀결됐다. 미-소 대리전을 치렀던 곳은 한반도뿐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니카라과에서도 미국과 소련의 대리 전쟁이 벌어졌고, 특히 엘살바도르는 한국과 비슷하게 비극을 경험한데다 또 유사하게 과거 청산 과정을 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쿠바가 사회주의 혁명을 이룬 이후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니카라과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의 불씨가 일어나자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다른 국가들에게도 이 도미노가 영향을 미칠까봐 무척 긴장했다. 소련이 사회주의 혁명 세력을 지원하자 미국은 니카라과 족벌 독재 세력인 소모사 가문을 지원하면서 혁명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했다. 1979년에 혁명 세력은 소모사 정권의 잔혹한 독재를 종식했다. 
  엘살바도르에서도 사회주의 바람이 불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1980년에 엘살바도르 군사 정부에 1억 5천 만 달러를 원조했다. 미국은 군부를 적극 지원하여 사회주의를 열망하는 민중과 대립 구도를 유지시켰다. 내전 상황을 지속시킴으로써 국력이 서서히 소진되도록 하려는 전략이었다. 엘살바도르는 12년에 걸친 내전으로 민간인 사망 7만 5천 명, 난민 40만 명 발생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던 그들의 불행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게릴라를 없앤다며 천 명이 넘는 민간인을 몰살한 1981년의 엘모소테 마을 학살은 ‘빨갱이’를 색출한다며 양민을 닥치는 대로 학살한 한국의 4·3 사건과 흡사하다. 19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소련이 쇠락하는 조짐을 간파하자 미국은 엘살바도르 내전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한다. 소련의 영향력이 사라진 마당에 내전을 지원하는 건 돈과 시간의 낭비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엔을 끌어들여 엘살바도르 내전을 끝냄으로써 국제적인 비난 여론에서 슬그머니 벗어났다.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국가가 그러하듯 과테말라 역시 오랜 군부 독재 시기를 겪었으나 1944년에 공정한 자유 선거를 치러 철학박사 출신 개혁가 아레발로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후 1954년까지 노동자와 민중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꾸준히 지속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과테말라 역사는 미국의 군사 개입으로 또 다시 혼돈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1960년부터 1996년까지 오래 지속된 내전 기간 중에 군부 세력들에 의해 무수한 인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1996년에 구성된 과테말라의 ‘역사진실규명위원회’는 18개월에 걸쳐 진상을 조사하여 군부 독재 시기 동안 440개 마을이 전소되고 15만에 이르는 난민과 15만에 이르는 사망, 실종자를 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량 학살을 주동한 지휘관들에게 법원은 상징적 의미까지 담아 징역 6~7천 년형을 선고했다.
  역사의 비극을 청산하려면 적어도 네 단계가 필요하다. 진상 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상과 배상, 용서와 화해.  과거 청산 작업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까닭은 첫 단계가 조금이라도 미흡하면 다음 단계로 결코 이행될 수 없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과테말라는 첫 단계를 겨우 통과한 뒤 둘째 단계를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독재 세력의 몸통 격인 리오스 몬트는 여전히 처벌을 피해가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청산해야 할 과거가 여전히 많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2000년 공포 이후 개정을 거듭하여 2014년 2월 7일 자로 시행 중이다. 전환기의 정의를 수립하기 위한 역사의 매우 중요한 단계를 이행 중이다.
이강룡 역사 전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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