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듣기만 해도 진저리치는 단어들이 있다. ‘투쟁’이라든가 ‘농성’이라든가 ‘집회’니 ‘시위’니 하는 것들이다. 이런 단어를 함부로 말하거나 실천으로 옮기면 사상이나 출생지를 의심받는 일이 왕왕 생기곤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위험성을 알면서도 실천으로 옮겨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일 터인데,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그랬다.
  아미동 부산대병원 1층 로비 구석에는 ‘로비 농성 0일차’라는 걸개와 함께 돗자리가 깔려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산대병원 지부에서 만든 농성장이다. 이렇게 말하면 딱딱해 보이지만, 실은 그저 절박한 사람들이 뭐라도 해보려고 만든 보루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들이 병원 로비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면, 그들은 왜 로비에 농성장을 만든 것일까? 결론부터 말해 그들은 벼랑 끝 근처까지 밀려있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병원 측의 노조탈퇴 종용으로 노조 조직률은 가까스로 과반에 걸쳐 있는 상황이었다. 노조 조직률의 과반선이 무너진다는 것은 노조의 힘이 매우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취업규칙의 변경이나 경영상의 이유로 의한 해고협의 등에 있어 노조가 사실상 배제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인사상의 불이익을 언급하며 노조 탈퇴를 유도하는 것은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다. 동시에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나보다 후배를 주임간호사로 임용해 업무지시를 받게 하겠다는데 누가 버티겠어요?” 부산대병원 노조 서정관 부지부장은 이 말을 하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노조를 등진 90여 명의 사람들은 버티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누가 버티겠는가. 누구도 버티지 못하기에 이토록 케케묵은 방법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일 터인데.
  물론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에서 이런 행동이 부당노동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부산대병원이 이 사실을 몰랐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결국 알면서도 불법을 자행했거나, 아니면(낮은 확률일지라도) 노조가 없는 말을 지어내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부산대병원은 사실관계를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병원장은 노조와의 면담에서 ‘해당 사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단다. 노무담당 직원은 부산지방노동청의 조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 언론사의 기사는 부산대병원 관계자가 “경력관리 차원에서 노조를 탈퇴하는 것이 수간호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을 뿐, 강압이나 회유는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병원 측의 주장들을 들으며 필자도 쓴웃음이 나왔다. 병원장은 아는 바가 없고 관계자는 조언을 했을 뿐이란다. 그러니 속 편하게 노동청에서 결론 내려줄 때까지 기다리잔다. 문득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던 조합원이 떠오른다. 이들의 절실함에 대한 대답으로는 수준 미달이다. 노조는 부산대병원이 책임자를 처벌하고 사과할 때까지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한다. 상대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한쪽은 절박하다. 보는 이를 씁쓸하게 만드는 싸움이다. 그래서일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병원’이라던 부산대병원의 로비 농성장은 유난히도 차가웠다.

 김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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