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프랑스 파리 7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던 중 강의실 밖에 학생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재밌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 이유를 대학 관계자에게 물었다. 학생이 교수보다 먼저 강의실에 들어가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강의실 밖에서 교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매우 낯선 광경이라고 생각했지만, 학생 조합이 직접 저명한 학자를 교수로 모셔 강의를 듣던 것이 유럽 대학의 모태라는 사실을 고려하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이상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다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얼마 전 서울 모 대학 수석 졸업생이 운영하는 토스트 가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인구론’(‘인문대 졸업자의 90%가 논다’의 줄임말)의 대표적인 예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본인은 사람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인문학을 실천하는데 장사만한 것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취직이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사용되는 현 시대에서 기성세대의 인식을 뛰어 넘은 결정을 과감히 한 이 청년은 훗날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에게 대학은 어떤 것이고, 또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독일의 언어학자 빌헬름 훔볼트는 대학이 계몽주의적 직업교육이나 단순 학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의 창조적 교육활동에 기반을 둔 연구 중심적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대학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취업이 대학 진학의 주요한 목적이 되고, 취업률로 대학이 평가되는 우리의 현실을 통해 200년 전 훔볼트가 정의한 대학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상아탑(象牙塔)이라 여겨지던 대학에서 창조적 학문 활동은 점점 사라지고, 대학이 단순지식만을 전달하거나 각종 국가시험과 취업준비를 위한 기업의 노예(?)로 변해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심지어 교육부마저도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모두가 실용만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대학의 구성원인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대학생’이라는 단어에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측면에서 여러 의미가 부여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 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교육을 단순 지식 전달이나 직업교육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실용주의를 넘어서는 창조적 활동의 주체가 되는 과정, 즉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분석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창의적 지식인이 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봄을 알리던 매화가 지고, 벚꽃이 만개했다. 생명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이 멋진 봄날에 향긋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대학생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김태호(언어정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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