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쳐>

더글라스 케네디 저/ 2010/밝은세상

 <불놀이>

조정래 저/2010/해냄

 

 

 

 

 

 

 

 

<불놀이>와 <빅픽처>. 두 권의 책 사이에는 27년의 간극이 있다. 조정래의 <불놀이>는 지난 1983년에 출간됐고,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처>는 2010년에 등장했다. 사람으로 치면 ‘세대가 다르다’고 할 법한 책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 두 책은 ‘죄’와 ‘인간의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배점수와 벤, 같지만 다른 삶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의 삶을 동경한다. 두 책의 주인공인 배점수와 벤은 이 막연한 상상을 현실화시켰다. 그들이 얻은 새로운 삶은 어떤 모습일까?
<불놀이>의 주인공 ‘배점수’는 신 씨 가문의 머슴이었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세습된 계급이다. 신 씨 문중의 밭을 일구던 배점수는 6·25전쟁 중 신 씨 가문 38명을 학살한다. 이후 빨치산 생활을 하던 그는 다시 도시로 내려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자신 때문에 고향에서 몰매를 맞아 죽은 아내와, 충격으로 정신 이상자가 된 아들은 잊었다.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사업, 그는 완벽하게 ‘황 사장’으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배점수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을 ‘신범호’라고 밝혔다. 신 씨네 후손이었다. 신범호는 배점수의 죄를 추궁하고, 배점수는 애써 감춰왔던 과거와 다시 한 번 직면하게 된다.
<빅픽처>의 주인공도 두 번의 인생을 산다. 미국 월가의 변호사 벤은 아내와 두 아들을 키우고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이웃집에 사는 사진가 게리와 불륜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벤은 우발적으로 게리를 살해한다. 그는 완전 범죄를 계획하고 게리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위장했다. ‘게리’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그는 우연히 찍은 사진이 지역 신문에 게재되면서 사진작가 ‘게리’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유명세 때문에 벤은 본래 정체가 들통 날 위기에 처한다.
두 작품에는 새로운 삶을 향한 인간의 격렬한 욕망이 투영돼 있다.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는 인간의 광기가 동반됐다. 새로운 삶을 얻은 후, 외면했던 지난 삶의 과오와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도 동일하다. 하지만 소설 속에 그려진 두 사람의 최후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한 사람은 죄의식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한 사람은 또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배점수와 벤이 각자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는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책을 모두 읽은 뒤에도 이들이 맞은 최후가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알 수는없을 것이다. 그 의문이 바로 두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

<불놀이>는 해방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 등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주와 농노 사이에 벌어진 학살과 복수, 그리고 또 이어지는 복수 속에 비극이 담겨있다. 배점수와 신범호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곧 우리의 역사이고, 그들에게 남은 상처는 곧 우리 민족에 남은 상처인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를 짓누르는 압박감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빅픽처>는 이러한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롭다. 오히려 독자들에게 이상한 경험을 선사한다. 벤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느새 그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죄에 대한 상반된 감상,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두 책을 읽는 독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 속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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