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부산 시위의 메카였던 부산시청 시민광장. 그러나 지난 2012년 부산시 측이 미관상의 이유로 광장에 조형물과 화분을 설치하면서 다수의 시민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

  한국 근현대사는 광장의 역사와 함께한다. 1919년 3·1운동이 촉발됐던 옛 서울시청 앞 광장,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던 전남도청 광장, 1987년 6월 항쟁의 서울광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광장과 함께 변모했다. 일제 강점의 수모도, 군부 독재의 폭압도 모두 역사가 된 지금, 우리에게 광장은 어떤 공간일까?

광장의 정치, 우리의 역사
  3·1운동 등 한국 근대사의 중요 사건이 벌어졌던 광장은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권력 상징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서울 여의도공원의 전신인 5·16광장이 대표적이다. 1971년 광장 개장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명명한 이름이다. ‘유신헌법 전문에서 규정한 4·19와 5·16의 정신을 이어받은 근대화의 상징’이라는 의미였다.
  합법적인 집회 시위가 불가능했던 군사 정권 시절에는 대학이나 성당 등 장소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공권력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정희선(상명대 지리) 교수가 지난 2004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논문 <서울시 집회·시위 발생 공간의 특성과 변화 : 1990~2003년>에 따르면 집회·시위를 강력히 탄압하던 1990~1991년에는 대다수의 집회가 성당, 학교 등 공간에서 벌어진 집회가 많았다.
  그러나 시민들의 의견 표명이 자유로워지면서, 시민들이 집회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동시에 ‘광장’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정희선 교수는 이는 ‘사회 전반에 민주화 분위기가 고양되면서’ 가능해진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권력의 과시와 상징의 도구로 활용되던 광장이 민주화 이후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것이다.
  2000년대부터는 그야말로 ‘광장의 시대’였다. 2002년 발생한 효순이·미선이 사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등으로 이어진 광장의 역사는 최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집회에까지 닿았다. 아고라 광장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제 광장은 단순히 ‘넓은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궁극적으로는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찾는 공간’이 됐다.

그들이 말하는 ‘광장의 탈정치화’
  하지만 광장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시민의 모습에 긍정적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24일, <조선일보>는 ‘서울시청 광장서 시위·집회 그만하고 시민에게 돌려줄 때’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서울광장 사용이 2010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집회·시위가 크게 늘었는데, 이 때문에 잔디 보수에 돈이 많이 들고 주변이 시끄러우니 집회·시위는 허가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젠 제발 서울광장을 시민들의 것이 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 달라’는 주장은 비단 <조선일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투데이>의 사설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 이제 시민에 돌려줘야’ 등, ‘시민을 내쫓고 광장을 차지한 시위대’라는 언론의 프레임은 어디에서나 등장한다.
  이 프레임은 현실 정치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지난해 3월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서울광장에서 정치적 목적의 집회·시위 개최를 금지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시민에게 서울광장을 돌려드리겠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광장의 탈정치화. 하지만 대한민국의 누구에게도 시위대에 광장을 봉쇄할 권한은 없다. 헌법 제21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는 “광장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면서 시위를 할 때는 허가가 필요하다”며 “어떤 성격의 행사인지에 따라 허가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순이 깃든 부산의 광장
  부산 속 광장의 분위기는 더욱 냉랭하다. 광장 정치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분위기다. 부산에는 현재 부산역 광장, 부산시청 광장, 송상현광장 등 광장이 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주로 서면 쥬디스태화 옆 거리에서 집회·시위가 치러진다. 지난 2002년 ‘미선·효순이 촛불집회’부터 최근 국가정보원 규탄 시위까지 모두 쥬디스태화 옆 거리에서 개최됐다. 광장과 달리 공간이 별로 넓지 않고 불법 도로점거 문제로 경찰과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데도 이곳에서 시위가 이뤄지는 이유는 부산 광장에 있다.
  과거 시위의 메카였던 부산시청 광장. 광장은 화분과 조형물로 채워져 다수의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상태였다. 부산광역시 측이 지난 2012년 미관상의 이유로 조형물과 화분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시민 대신 인근 의회로 출입하는 사람들만 광장을 지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부산시청 ‘시민광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상황. 결국 시민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광장이 아니라 광장 옆 인도를 사용해야 했다. 지난해 장애인전용택시 확대를 주장하던 지체장애인 역시 광장 옆 인도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다.
  지난해 ‘부산의 대표 광장’을 표방하며 개장한 송상현광장의 상황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광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송상현광장의 관리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사전에 ‘시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사용면적에 따라 시간당 사용료(1㎡당 10원)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4천 여 ㎡의 ‘선큰(Sunken)광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4만 원 이상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1,800억 원이 투입됐지만 매주 주말 열리는 행사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이 됐다. 결국 송상현광장은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으로부터 ‘불통 광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광장 정치’를 말하다
  지난 2009년, 논문 <광장과 정치>를 통해 광장 정치를 논한 하상복(목포대 정치언론홍보) 교수. 그는 광화문광장을 예로 들며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이 탈정치적인, 문화와 일상의 공간이라고 규정했지만 그러한 논리의 이면에는 정치권력의 의지가 관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정치화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의지의 발현이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현재 대한민국의 광장은 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부산 송상현광장을 비롯해 서울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대전 엑스포시민광장 등은 사용료도 받는다. 결국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제를 인정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시민이 목소리를 내는데는 시장의 허가와 돈이 필요하다는 모순이 탄생한다. ‘허가를 받지 않은 시위’는 ‘불법 시위’로 비판 받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광장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공간이 돼야 할까. ‘자유로운 의사 표현 공간’으로서의 광장이 바로 그것이다.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는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으로 서로 토론, 설득하고 논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시민들을 위해서 광장의 정치적 소통과 참여의 기능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촬영한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특별법 제청 촉구 집회의 모습. 보수언론은 이를 두고 특정 세력이 시민들의 광장을 빼앗았다며 광장의 탈정치화를 주장했다(사진=부대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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